이효리가 아주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대부분의 시간을 제주의 집에서 보내며, 아주 가끔 서울에 올라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 잠시 베를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메일 인터뷰 질문에는 행복과 평화로 채워진 보통의 날들이 담긴 대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에는 채우기보다는 비워가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새벽 4시 반에 시작된다는 그녀의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부러웠고, 건강하고 밥 잘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대답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나로 살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삶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그녀의 글에 크게 손을 댈 필요가 없었던 건 평범한 나날이 쌓이며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삶이 점점 단단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블로그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아 대중이 그간 통 소식을 알 수 없었어요. 그동안 뭘 하며 어떻게 지냈나요?
그냥 뭐 특별한 것 없이 지냈어요. 남편을 내조하면서 동물들과 산책하고 밥해 먹고 그런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요가 수련을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지극히 평범하게 지내고 있어요.
제주도에 내려간 지 꽤 오래되었어요. 제주도에서 보내는 일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하루에 한 번씩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가요. 지금 다섯 마리의 아이들과 살고 있는데 서울에서 산책 다닐 때는 제약이 많았거든요. 제주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오름이나 들판이 많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아요. 그 시간이 가장 평화롭고 좋아요.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보통 새벽 4시 30분쯤 일어나서 차를 한잔 마시고 요가 수업을 다녀와요. 낮잠도 자고 개들이랑 산책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편이에요. 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10시에서 11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요. 가끔 요가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요.
제주도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까요. 예전에는 집이 그냥 잠자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주에 살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고, 집이 가장 즐거운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결혼식도 집에서 했고요.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집에서 낳고 싶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곳도 병원이 아닌 집이면 좋겠어요. 그만큼 집은 제게 의미가 많은 곳이에요.
제주에서 지낸 시간이 꽤 오래되었어요. 그동안 그곳에 생긴 변화도 있을 테고요. 그 변화 중 좋은 것과 아쉬운 것이 있나요?
가장 큰 변화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차를 많이 마시는 습관도 생겼죠. 좋은 변화는 TV나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줄어 그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예요. 쓸데없는 정보에 신경 쓰지 않으니 그만큼 머릿속을 비울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은 가끔 친구들을 만났을 때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특히 미디어와 관련된 주제에는 동참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얼마 전 다른 사람의 SNS에서 서울에 올라와 찍은 사진을 봤어요. 가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나 하는 일이 있어요?
서울에 잘 안 가는 편인데 가끔 갈 때면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요. 시부모님이나 친정 식구들을 만나 밥을 먹거나 해요. 지유명차라고 보이차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찻집이 있는데 카페 대신 그곳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에요.
지금 조용하고 고요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 걱정이나 고민이 없는 건 아닐 거예요.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요즘 고민이 있다면 뭘까요?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그래서 더더욱 흉내 내기 식의 음악이 아닌 진정성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베를린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베를린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은 어디예요?
공원을 좋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공원에서 보내는 편이에요. 마우어파크나 플리마켓에 들러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공원에서 요가 하고 책 읽고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한창 연예 활동을 할 때와 삶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으니 아름다움의 기준 또한 달라졌을 것 같아요. 행복에 대한 기준도 달라졌을 테고요.
미의 기준이 달라졌다기보다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 확고해진 것 같아요. 원래 자연스럽고 튀지 않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좋아했는데 연예계에 있다 보니 많이 화려해졌던 게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제주에 살다 보니 역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확신이 들어요. 행복의 기준도 마찬가지고요. 전에는 많이 가져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몸이 건강하고, 밥 잘 먹고,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가장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요.
환경과 동물에 여전히 관심이 많죠? 셀러브리티의 삶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은 좋기도 하고 때론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예전에는 내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면 지금은 내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흘러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편안해진다면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환경이건 동물이건 여전히 그와 관련된 문제가 많아요. 요즘은 이 지구의 끝이 해피 엔딩일지 모르겠어요.
환경과 동물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안 되는 것은 소외되기 마련인데 식물과 동물처럼 반발할 수 없는 약한 존재는 이런 세상에서 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보다 크고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다 같이 마음과 힘을 모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제주에 살아서 그런지 지구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피조물이잖아요. 가끔은 나 역시 그것들이 망가지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속상해요.
요즘 읽은 책, 요즘 듣는 음악, 요즘 마음이 많이 가는 영화가 뭔지 궁금해요.
예전에 비해 책이나 음악, 영화처럼 무언가 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멀리하는 편이에요. 전에는 더 좋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다면 지금은 그냥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지내는 게 더 좋거든요.
다시 앨범을 낼 계획은 없나요? 가끔 무대가 그리울 것 같기도 해요.
물론 계획하고 있어요. 곡도 쓰고 구상도 많이 하고, 서두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 작업의 결과가 내년쯤이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봐요.
나이가 들어도 이효리라는 사람이 잃지 말았으면 하는 매력이 있나요?
사람의 매력은 나이와 상관없는 것 같아요. 자연스러움? 자연과 함께 있어도 도드라지지 않고 자연스레 녹아드는 매력이라고나 할까? 좀 이른 질문이긴 하지만 올 한 해는 어떤 해였나요?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한 해?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이룬 일도 없고 이름을 알린 적도 없지만 내 38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아무 것도 하지 않다 보니 진짜 나를 만난 느낌? 내년에는 더 행복할 듯한 예감이 들어요.
점점 더 멋있어지네요. 외모도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