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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회 칸 국제영화제를 취재하러 프랑스 칸에 올 때,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와 홍콩 감독 왕가위의 ‘2046’이었습니다. 그런데 ‘2046’은 국내에서 상영될 예정임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모른다’의 국내 개봉 여부는 그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더욱 보고 싶었지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감독은 아니지만 국내에도 소개된 ‘원더풀 라이프’를 비롯, ‘환상의 빛’이나 ‘디스턴스’ 등 그의 모든 작품들이 저를 사로잡았기에 신작이 너무도 궁금했던 거지요.
그러나 개막 후 3일째 현지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 영화의 공식 상영 일정을 모두 놓쳐버렸습니다. 경쟁부문 출품작 중 가장 먼저 상영 스케줄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 영화를 본 몇몇 사람들로부터 멋진 영화라는 말을 들으니 더욱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러다 며칠 뒤 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칸 영화 마켓에서 이 작품의 시사회가 한 차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마켓 시사는 공식 상영과는 달리 30~50석 규모의 작은 상영관에서 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래서 상영 시작 1시간 전에 일찌감치 극장 앞으로 가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마켓 시사였다는 점이었습니다. 해외에 판권을 팔기 위한 목적의 상영이기에 바이어 아이디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인 볼 권리가 있었던 거지요. 전 분명히 상당히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온 바이어들이 먼저 입장하기 시작했고, 기자 아이디 카드를 들고 있던 제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습니다.
이승환의 노래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서, 결국 바이어들만으로 좌석이 다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출입을 통제하는 사람은 “만원이니 돌아가달라”고 사무적으로 말하더군요.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오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함께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들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버리더군요. 잠시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다가 그냥 그대로 기다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닫힌 상영관 문 앞에서, 저 혼자 말이지요. 그곳 직원이 “왜 기다리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혹시 이 영화를 보다가 도중에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대신 들어갈 수는 있을 것 아닌가”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그냥 싱긋 웃고 말더군요.
영화가 돌아가는 소리가 문 밖으로 조금씩 들리면서 더욱 안타까워졌지만,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직원도 안쓰러웠는지 이런저런 말을 붙이면서도 정작 들여보내주지는 않더군요. 그렇게 30분이 더 지나자 그는 제게 다가와 “바닥에 앉아서 보겠다면 지금 들어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네 맘 다 이해한다”는, 어린 조카를 보는 큰 삼촌 같은 표정으로 말이지요.
너무 기뻐서 가슴까지 두근거려가며 들어가 바닥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니 꽤 느리게 진행되는 그 영화를 보며 조는 사람들이 몇 명 눈에 띄더군요. 과장을 좀 보태서 말한다면, 순간적으로 격심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은데도 볼 수 없어서 밖에서 1시간30분을 기다렸는데, 누군 뒤늦게 들어와서 그 귀한 자리를 차지한 채 졸고 있다니요. 그로부터 10분 쯤 더 지났을 때부터 하나씩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을 볼 때도 무척 화가 나더군요.
영화요? 결국 2시간20분짜리 러닝 타임 중 20% 이상을 놓쳤지만, 너무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전부 다른 어린 네 남매가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채 좁고 지저분한 아파트에서 살아내는 과정을 담은 ‘아무도 몰라’는 제가 지난 2-3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슬픈 작품이었습니다. 자막이 끝까지 다 올라간 후, 곧이어 열리는 어느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저는 가슴 한 구석이 흡족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만일 사후에 영화의 신(神)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어서 제가 그곳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바로 오늘 일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가슴 졸이고 짜증내고 슬퍼하고 뿌듯해했던 그 몇시간의 유치함이 제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재증명 같았다는 거지요. “나는 아직 영화를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새삼스런 안도감이라고나 할까요. 어쩌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언제나 유치한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일년에 수백편씩 보아내는 일을 십여년 가까이 하고 있는 영화 기자로서, 앞으로도 저는 영화에 대한 처음 사랑을 종종 잊어가며 가끔씩 매너리즘의 위험 앞에서 휘청대겠지요. 하지만 이날의 경험은 그때마다 제가 영화에 대한 사랑을 다시 길어올릴 수 있는 넉넉한 우물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영화가 있어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