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춥지?" 항상 다정한 눈빛으로 여시를 봐주던 여시의 첫사랑 이제훈. 처음 그 애를 만난 건 고등학생 때였어. “야 기집애가 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 평소에 히스테리로 유명한 남자 선생이 수업을 들어 왔다가 여시의 치마를 보더니 들고 있던 볼펜으로 허벅지를 툭툭 치며 말했어. 속바지가 보일 정도로 올라간 치마 때문에 당황한 여시가 뭐라고 대꾸도 못한 채 얼굴을 붉히는데, “자꾸 볼펜으로 들추시니까 더 짧아지잖아요.” 하고 보고 있던 제훈이 갑자기 대꾸했어. 순간 선생의 얼굴은 시뻘개 지더니 여시에서 제훈으로 방향을 돌려서 폭언을 시작했어. “야 이 . 니가 뭔데 선생님이 말씀 하시는데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제훈은 사과를 하고도 몇 대나 더 머리를 쥐어 박히고 학교에 남아야 했어. “저기 미안” “뭐가?” “나 때문에 혼났잖아. 그리고 고마워.” “아냐. 근데 너 7번 버스타?” “어떻게 알았어?” “나도 그거 타거든.”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다정한 제훈이의 말투에 여시는 한결 편하게 그 애를 대할 수 있었고 “야 이거 진짜 재밌다.” “그치ㅎㅎ” 서로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을 공유하면서 두 사람은 처음보다 훨씬 가까워졌어. 제훈이는 일찍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와 둘이 사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고, 여시 역시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란 외로운 외동딸이었어. 그래서인지 둘은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게 됐어.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된 여시는 제훈이를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서 사랑하게 됐지만, 소중한 제훈이를 잃게 될까봐 수많은 밤을 고민으로 보냈어. “너는 어떤 여자가 좋아? “내 꿈에 나오는 여자.” “그게 누군데?” “내 미래의 신부겠지.” “얼굴 봤어? 예뻐?” “응.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야” ‘나는 글렀구나.’ 여시는 평소에 제훈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과 자신의 이미지가 전혀 맞지 않다는걸 알고 있었어. 소심한 성격의 여시는 제훈이가 자신을 좋아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시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제훈이가 섭섭했고, 스스로도 답답했어.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제훈이에게 투정을 부리게 됐고, 그게 싫어서 서서히 피하기 시작했어. “너 요즘 왜 그래?” “뭐가?” “섭섭하다” “왜?” “니가 나를 예전만큼 좋아해 주지 않아서” 여시는 답답했지만 차마 마음을 고백할 수는 없었어. 짝사랑에 지칠 무렵, 적절한 시기에 다가온 대학 선배는 여시에게 위안이 됐고 여시는 그 선배와 사귀게 됐어. “너 남자친구 생겼어?” “응.” “왜?” “왜라니? 나는 연애하면 안되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여시가 남자친구가 생긴 후에 제훈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가끔 여시는 제훈이가 생각 났지만 일부러 만나자고 하거나 찾아가지는 않았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시는 어느덧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고,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어. 여시는 애인이 주는 안정감에 행복했지만, “여시야!” 꿈속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여시를 부르면 여시는 잠에서 깨어나서 한참을 뒤척였어. 오랜만에 꾸는 그 꿈에 여시는 잠에서 깨서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학창시절에 받은 편지를 모아둔 상자를 열어봐 그 곳에는 제훈이의 편지가 가득해 공부안하고 지금 내 옆자리에서 자고 있는 여시에게 잘 먹는 여시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여시 아프지마 여시야 여시는 제훈이가 보낸 편지를 한 장씩 읽어보다가 문득 여시가 느꼈던 그 감정이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 편지에는 수줍지만 자기 마음을 조금씩 써내려간 제훈이가 있었어. 여시에게 오늘도 늦네. 그래서 지금 너 기다리면서 편지 쓰고 있어. 우리가 벌써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낸다 너랑 같이 보낼 열 번째 크리스마스에는 우린 뭘 하고 있을까? 나는 나중에 아내랑 트리 꾸미는 게 꿈인데 북받치는 감정에 여시는 용기내서 전화번호를 눌러봐 “오랜만이네” “어 번호 안바꿨네?” “응.” “그렇구나” “응” 둘은 한참이나 아무 말을 하지 못했어. “우리 만날래?” 제훈이의 제안에 여시는 옷을 대충 거치고 둘이 살았던 동네로 갔어. 제훈이는 벌써 와서 여시를 기다리고 있었어. “춥지?” 둘은 근처 술집에 들어가서 새벽이 올 때까지 얘기했어. “근데 나 결혼할지도 모른다?” “...왜?” “아 그놈의 왜는, 너는 맨날 내가 남자만난다고 하면 왜냐고 묻더라?” “여시야 나 근데 정말 궁금한거 하나 있어” “뭔데?” “니 미래에는 단 한 번도 내가 있던적이 없어?” 여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그런 여시를 바라보면서 제훈이가 말했어. “내 꿈에서 신부는 항상 너였는데.” 










2.

"여시가 하고 싶은거 다 하자."
항상 여시를 아껴주고 맞춰주던 여시의 구 남자친구 임시완
처음 시완이를 만난 건 학교 도서관에서 였어.
깨끗하고 잘생긴 남자가 움직이지도 않고 한참을 책만 읽길래
여시는 자기도 모르게 시완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어.

'진짜 잘생겼다. 말이나 붙여볼까?'
여시는 용기내서 시완이에게 다가갔어.
"저기요, 저 혹시 저랑 점심 친구 하실래요?"
"점심 친구요?"
"네. 제가 혼자 밥먹는걸 싫어해서.. 네..ㅎ..그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횡설수설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진 여시에게 시완은

"그럴까요 ? 저도 친구가 없어서 맨날 혼자먹어요"
하고 대꾸했어.
반듯하고 단정한 이미지 때문에 시완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의외로 없었다며
시완이는 여시에게 먼저 다가와줘서 고맙다고 말했어.
"내가 좀 낯을 가려서..."
그렇게 여시와 시완이는 매일 같이 점심을 같이 먹었고,
친구에서 이성으로 발전하게 됐어.

"나도 따라가면 안돼?ㅜㅜ"
"친구들하고 여행가는데 자기가 왜 따라가! 내 친구들 불편하게!"
"여시 없으면 외롭단 말야"
"공부 열심히하고 내 생각 많이하구있어!"
".. 알았어.. 가서 꼭 연락 많이해"
활발한 성격에 친구가 많았던 여시와는 다르게
시완이는 내향적인 성격으로 친구도 많지 않았고, 그만큼 여시에게 의지하는 일이 많았어.

"...시완아 왜 안자?"
"여시 니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날 떠나면 어떡하지?"
"그럴 일 없을꺼야.."
시완이는 그래도 불안하단듯이 여시의 허리를 꼭 껴안고 잠들었어.
여시는 시완이를 사랑했지만 긴 시간 반복되는 일상과
너무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시완에게 지치기 시작했어.
"시완아 우리 헤어지자"

"..."
"시완아"
"나도 들었어."
"..미안해.."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까?"
"기다리지 말아줘..미안해 시완아"
그렇게 연애는 끝이 났고, 여시는 시완이가 자주가는 도서관이나 식당, 카페에는 가지않았어
때문인지 여시가 졸업할때 까지 둘은 마주치는 일이 없었고, 여시는 다행으로 여겼어.
가끔씩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여시를 끌어 안던 시완이를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불편했지만,
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고, 시완이가 그리울때도 죄책감에 그래선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어.
시간이 흐르고 여시는 취업에 성공했고, 직장 동료에게 소개받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어.
얼마 후 둘은 결혼을 약속하게 됐고, 신랑이 초대받은 출판 기념회에 여시도 참석하게 됐어.
많은 사람들 틈에서 정신 없던 여시는 그 곳에서 시완이와 재회했어.

여전히 말끔하고 단정한 시완이의 모습을 보자, 여시는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여전히 외로워 보이는구나'
하지만 여시는 시완이 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없었어.
시완이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거든
하지만 여시의 예비 신랑은 여시의 손을 잡고 시완이에게 다가갔어.
"임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번에 말씀 드렸던 제 와이프 될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시완이는 여시를 보고 놀라지도 않고 인사했어.
"네 안녕하세요"
예비 신랑이 무어라 무어라 떠들었지만, 그런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
여시의 머릿속엔 지금 시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그런 생각들만 가득했어.
"자기야.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되는 여시는 화장실로 몸을 피했어.
마음을 추스리고 밖으로 나오는데

"여시야"
거기엔 젖은 얼굴로 시완이가 있었어.
"시완아.."
여시는 흐트러진 시완이를 보고 눈물이 흘렀어.
"미안해 난 정말..."
"꼭 결혼해야돼?"
"..."
"안하면 안돼?"
"시완아"
시완이는 예전처럼 여시의 허리를 껴안으며 말했어

"그럼 난 맴도는 것도 못하게 되잖아"
아.. 둘다 짱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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