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질왜이래;)
원더걸스 예은의 팬인 B1A4 산들은
예은이 예니데이에서 직접 언급해줌
예전부터 태양 팬이었던 아이유는
태양이 기습포옹해줌
게다가 엄마보다 더 좋다는 "코린 베일리 래"의 내한공연때
오프닝 게스트로 러브콜 받고, 코린이 작곡한 곡 4AM에 자기가 작사해서 앨범에 실음
ㄷㄷㄷ
빅뱅 팬으로 구성된 틴탑은
귀족을 만난 평민이 됨ㅋㅋㅋㅋㅋㅋ
슈주 노래가 좋다던 믹키짱팬규 조규현은
슈주가 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믹키유천과 사진도 찍음.
팬한테 "나친해" 라고 인증도 하고 2009년 싸이글꼴은 믹키유천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방신기와 보아, SM의 덕후이자 점핑보아 1기 출신인 샤이니 키는
SM에 들어가 동방,슈주,보아 등과 함께 공연을 하는 사이가 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심지어 보아와 듀엣 무대
이효리를 위해 살고 랩을 해서 데뷔를 할거라던 빅뱅 탑은
.................그러하다
이....이민우 코..코스프레를 하던 이 여학생은
원더걸스의 유빈이 되어 이민우 노래 피쳐링을 하고
민셩팬페이지의 마스터였던 전효성은 시크릿이 되서
선배가수 신화의 컴백을 RT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거 자료 못찾겠다)
god 호상 커플 팬픽을 쓰던 더쿠는 카라의 한승연이 되고
호상 팬픽 읽던 소수의 남학생중 하나가 엠블랙 미르가 되어
방송에서 호상 드립을 칩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라이 미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시오페아 남학생은 인피니트 엘이 되어
거의 맞팔없다던 김재중의 맞팔을 받아냄
그리고 다른 의미로 성공한 '덕후'(오타쿠) ..
("나선환!!!"이래서 나선환 만드는 중인 엘명수..와 동참해주는 성규)
클릭비 숙소에 모아둔 용돈으로 쇼파를 선물한 여학생은
티아라 소연이 되어 TV프로그램에서 오종혁 만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동경하던 연예인 뒤를 따라 성공한 덕후는 아니지만
성공한 덕후
부럽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축덕은 결국 그분을 만났습니다
+
그리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화> 광팬이었던 한 연예기자의 고백오마이뉴스 | 2012.03.10 오전 10:34
최종수정 | 2012.03.11 오후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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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현진 기자] 작게보기
▲ 신화 컴백 기자회견이 5일 오후 서울 청담동 청담CGV에서 수많은 취재진의 취재경쟁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 이정민
'그 날'은 허공을 보고도 1분에 300자를 칠 수 있다는 기자의 속기 신공을 아직 터득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러웠다. 근 10년 만에 과거 우상들과 실물을 마주했는데, 모니터 화면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데뷔 14년차 그룹 신화의 컴백 기자회견이 있었던 지난 5일, 나는 공과 사의 욕망이 부딪히는 기로에 앉아 있었다. 팬과 기자의 정체성으로 어지러운 가운데, 일단 사적인 궁금증을 공적인 질문 형식 안에 담기로 마음속에서 합의를 봤다. 세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을 기다리는데 에릭의 첫 마디가 애써 친 공적인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
"오마이뉴스 오마이스타 기획기사 잘 봤습니다."
최근 신화의 컴백에 맞춰 <오마이스타>에서 기획한 기사 이야기다. 결계와 함께 얼굴 근육이 이완되며 헤벌쭉해진 표정은 '쿨'하지 못했다. 쿨할 수 없었다. 그가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한 명의 연예부 기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기자는 14년 전 팬으로 돌아갔고 신화컴퍼니 에릭 대표님은 오빠가 됐다.
작게보기▲ 5일 오후 서울 청담동 청담CGV에서 열린 신화 컴백 기자회견에서 전진이 익살스런 대답을 하자 이민우, 에릭, 신혜성(왼쪽부터)이 박장대소를 하고 있다.
ⓒ 이정민
그래, 나 팬이었다. "네가 플래카드 한 장만 덜 만들었어도..."
고백컨대, 내 청소년기의 팔 할은 '오빠'들이 키웠다. 솔직히 복수의 그룹, 다수의 오빠들을 탐닉했다. 이것이 사춘기를 지나 겪었던 '아이돌기'다. 마지막으로 신화를 좀 오래 앓았고, 아이돌기에서 졸업했다.
엄마는 그때 내가 플래카드 한 장만 덜 만들었어도 더 좋은 대학교에 갔을 것이라고 한탄하곤 한다. LED 야광봉을 흔드는 지금 팬들에게는 아날로그한 방식이겠지만, 우리 때는 대개 검은 바탕에 형광색 글자를 새겨 넣은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여러 장을 작업하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간판디자이너와 견줄 수 있는 수준에 다다라 있었다.
한 번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친구들과 함께 장인정신으로 작업 중이었다. '내가 오빠 때문에 못 살아'라는 신세한탄형 문장 중에 나는 '살'을 담당했다. 난이도 높은 리을(ㄹ)의 굴곡짐에 투덜대며 칼질을 하고 있는 중에 담임선생님에게 걸린 나는 '살'과 함께 복도로 소환됐다.
"너, 또 가수 애들 따라 다니냐!"는 불호령에 나는 일단 "교회에서 하는 거예요"라고 둘러댔다. 때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중순. "이게 무슨 글자인데?"라는 날카로운 질문이 파고들었다. '오빠 때문에 못 살아'라고 어떻게 말하나.
"살...살아 계신 주님이요."
나는 '살'과 함께 교실로 살아 돌아왔다. 앞으로도 그 날과 같은 임기응변은 내 생애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무교였던 나는 당시 발휘된 기지가 주님이 아니라, 오빠들을 향한 팬심 덕분이었다고 굳게 믿었다.
[관련기사] 1998년 데뷔! 사진 한 장으로 정리한 신화 14년
작게보기▲ 1998년 1집 수록곡 '천일유혼'으로 활동할 당시 신화의 풋풋한 모습
ⓒ SM엔터테인먼트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
그렇게 스무 살이 되고 오빠를 쫓아다니느니 눈앞에 손으로 만져지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낫다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아이돌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TV에 신화가 나와도 과거의 유물을 보듯이 보게 됐다. 심지어 팬심의 절정 단계라는 팬픽(팬+픽션)을 쓴 적도 있지만, PC통신 시대의 종료와 함께 파란 화면 안에 묻었다. ('절친'은 이 사실을 나를 놀리기 위한 흑역사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던 2004년, 7집 <브랜드 뉴(Brand New)>로 돌아왔던 신화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오빠가 아니라 남자였다. '지금부터 셋까지 셀게'라는 박력과 바로 '원 모어 타임'이라며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여지를 담은 가사는 흩어졌던 팬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물론, 아이돌기 때처럼 '활동'하지 않았지만, 전처럼 신화를 응원했다.
어쩌면 이것은 '커밍아웃'이다. 팬이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기사를 쓴 것은 14년 전의 설렘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이 최장수 그룹의 힘 덕분이다. 신화로 인해, 팬과 스타란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는 관계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됐다.
기자라는 직업을 객관성 안에 잠시 가둬 두고 한때 팬으로서 말하자면, 오빠들은 여전히 우리를 '앓게'할 수 있다. 누군가는 남자 인생, 삼십부터라고 하지 않았나. '브랜드 뉴' 때의 감동을 다시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앍'.
그리고 다시 기자로 돌아와 다짐하건대, 과거의 팬심 때문에 기자 윤리강령을 거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약속은 추측성 스캔들 기사를 쓰거나 대포 망원렌즈를 끼고 잠복하는 일 역시 없을 것이라는 거다.
작게보기▲ 5일 오후 서울 청담동 청담CGV에서 열린 신화 컴백 기자회견에서 한자리에 다시 뭉친 멤버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기사야 팬미팅 후기+잡담이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쿠가 기자가 되어 신화를 만남
더쿠가 되려면 성공한 더쿠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