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이영 교수의 저서인 <잊혀진 전쟁 왜구>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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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년 고려군의 젊은 장수인 배검이 왜구에 사신으로 갔을 때, 왜구들은 배검을 철기(鐵騎)로 호송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철기는 쇠로 만든 갑옷을 입힌 말이나 그런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을 뜻한다.
일본의 경우는 말에 갑옷을 입힌 중장갑 기병이 미나모토 가문과 다이라 가문이 싸운 겐페이내란기에 나타났는데, 볏단을 겹쳐서 말에게 입힌 경우였다.
그리고 가마쿠라 시대에서부터 고려 말 왜구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남북조시대 무렵에는 태평기와 같은 사료에서 말에 갑옷을 입힌 중장갑 기병의 경우가 여럿이 확인되고, 그 실물 중의 하나가 현재 야스쿠니신사의 전쟁 관련 유물 전시관인 유취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태평기에는 이런 구절이 실려있다.
"시오즈구로라는 5척 3촌 되는 말에 쇠사슬로 된 갑옷을 입히고..."
(마갑을 걸친 말을 탄 일본 무사들의 복식을 재현한 사진과 그림들)
또한 남북조시대 일본 무사들은 말 위에서 칼이나 창으로 싸우는 타격전을 벌였다. 태평기에서는 활과 화살을 지닌 궁사기병이면서도 전투에서는 활과 화살을 사용하지 않고 마상타격을 하고 있는 경우도 보인다. 이러한 타격기병의 등장은 6세기 이래 궁사기병을 전통으로 한 일본 기병의 역사상 획기적인 변화였다. 남북조시대 일본 무사들은 말을 타고서 태도(타치)와 장도(나기나타)와 창과 도끼 등의 무기를 쥐고서 적에게 돌격하여 백병전을 벌였다.
이러한 양상은 고려군과 왜구가 싸운 황산전투 당시, 왜구의 대장인 아지발도가 잘 보여주었다.
"나이는 겨우 15~16세 정도 되고 외모가 단아하며 용감무쌍한 적장 한 명이 나타나서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돌격하니, 가는 곳마다 삼대처럼 쓰러지며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다. 아군은 그를 아지발도라고 부르며 모두 피해 달아났다."
아지발도는 남북조시대 기마 타격전을 벌였던 일본 무사들의 전투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