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일 것 같나요?
그것은 바로 "가정사" >입니다.
단편적인 예를 들겠습니다.
여기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있습니다
자상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그리고 많이 의지되는 형제
그 속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대부분 충분한 애정과 보호를 받아온 아이는 다른사람에게 그것을 베풀줄 압니다.
아이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타자에 대한 호감과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폭력을 일삼는 가정이 있습니다.
술을 먹지 않고도 폭언이 심하며 사랑이라고는 찾을 수 없습니다.
형제 관계에서 손위만 혹은 손아래만 예뻐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또는 편부, 편모 가정.
혹은 맞벌이로 인해 딱히 유대감이 생기지 않는 집도 있겠지요.
이런 가정에서 자란 각각의 아이가 서로의 가정을 봅니다.
전자의 아이는
"에이, 그래도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어"
"드라마 같은데서나 보이는거지 진짜 저런 부모가 있을까?"
후자의 아이는
"세상에.. 저런 부모도 있구나"
"어떻게 저런 부모님이 있을수가 있지?"
전자의 아이는 긍정주의에 세상속 사랑을 믿는 아이입니다.
후자의 아이는 비관주의에 세상의 냉대를 받은 아이입니다.
전자의 아이가 세상물정모르고 함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자의 아이가 사랑도 모른채 염세주의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사람들을 겪게 되면서 이런저런 각기의 사정이 있는 가정들을 겪으면서
서로 보듬고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근데 절대 와 닿지는 않습니다.
상처는 상대적으로 더 아픈거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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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를 아시는지요.
장애가 아닌 한 아이의 모든 행동은 부모때문에 벌어집니다.
우울증은 암세포보다 더 위험합니다.
암은 암으로 죽지만 우울증은 여러형태로 사람을 잠식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응급처치에 불과 해요.
아이가 5~6살 될때까지 그렇게 키워놓고 한 일주일간의 케어로 완전히 바뀔거 같나요?
사람은 안바뀝니다. 특히 어른은요.
아이는 바뀔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잊을 수 있거든요
정말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하지 않는한 저 첫 상처는 죽을때까지 안고 갈겁니다.
그렇기에 그전에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열심히 피력합니다.
밥을 안먹는다. 욕을 한다. 무언갈 부수고 다닌다. 때린다.
심각한경우는 소아자해도 본적이 있습니다.
소리를 치는거죠.
자기좀 봐달라고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무조건' 말 그대로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로 자식을 사랑하는 거죠
배우지 않아도 태아가 느끼고 모체가 느낍니다.
태아는 당연히 부모의 사랑을 갈구합니다. 배우지 않아도요.
저는 아이는 무조건 행복해야하고 무조건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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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비어버린 공허감은 좀처럼 채우기 어렵습니다.
밑빠진 독과 같죠
어릴때 받는 상처는 절대 피가 멈추지 않습니다.
단지 아픔만 익숙해 질뿐이죠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형태로든 트라우마가 남습니다.
흔하게로는 애정결핍, 사람에 대한 먼 거리감, 결혼불신
심각하게는 성인혐오까지 오기도 합니다.
편부모가정의 학생을 상담한다거나 성인상담을 하다보면
으레 이런 상처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겐 각각의 방패가 있습니다.
타인에게 냉대해 자신에게 상처입히지 않으려는 방패
반대로 울어도 웃는 것처럼 미소지으며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패
같은거 말이죠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록 가정은 불행했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잘 자랐다는 사람.
가족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다는 사람.
물론 그런사람도 있죠
당신도 저렇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동정을 전제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알아주세요
단지 현재 자신의 모든 행위의 기저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영향을 끼친것들의 집합체라는 것을요.
날씨하나, 기상시간 하나 마저도요.
상처를 부끄러워 하시나요?
사람 모두가 가슴속에 못잊을 못 하나씩 박혀있고 불완전한 존재로 살다 갑니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것 뿐입니다.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