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이 전쟁의 영문명은 War of the Parcific(스페인어: Guerra del Pacífico)이고, 우리가 흔히 하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Pacific War이다.그냥 문구만 도치된 것 같지만 신경쓰지 말자.
Contents
- 1 배경 2 전개 3 결과
[edit]
1 배경 ¶나폴레옹 전쟁 이후 혼란에 빠진 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식민제국이 일제히 독립하며 신생독립국가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남아메리카 정세는 혼란에 빠졌다. 당연히 제대로 된 중앙집권국가 형성도 어려웠고, 그 와중에 명확한 경계선이 없는 관계로 국가간 영토분쟁도 빈발했다. 즉,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볼리비아의 태평양 연안 지대인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지역 문제였다. 이 지역은 남위 18도를 국경으로 정한 칠레-볼리비아간 합의에 따라 볼리비아 영토가 된 곳으로, 구아노와 리마로 가는 길목이자 최후방위선인 미라홀로레스(Miraflores)에 패잔병과 예비군, 갓 징집한 신병에 용병까지 긁어모아 약 1만 명을 배치해 결사항전에 나섰으나 칠레군에게 끝내 패퇴, 3,000의 병사만 잃고 나머지는 와해되고 말았다. 결국 1월 17일 수도 리마가 칠레군의 손에 떨어졌고, 뒤이어 페루 해군의 잔존함정이 칠레 해군에 포착되어 모조리 전멸당하면서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그러나 페루군은 각지에서 게릴라식으로 항전했고, 볼리비아도 전쟁을 멈추지 않아 산발적인 교전이 이후 2년여간 지속되었다. 물론 전쟁을 하면 할수록 불리한건 페루와 볼리비아였고, 결국 1883년 교전당사국들은 종전에 합의했다.
[edit]
3 결과 ¶
칠레는 볼리비아로부터 안토파가스타 주를, 페루로부터 타라파가, 아리카, 타크나(Tacna) 3주를 획득했다. 순식간에 칠레의 북부 국경이 남위 18도까지 치솟아 오른 것이다. 전후 이들 지역의 막대한 자원을 장악한 칠레는 개전 이전 1,500만 페소였던 연간 세수가 종전 후 1년이 지난 1885년에는 6,400만 페소로 4배 이상 껑충 뛸 정도로 경제적인 성장과 부의 획득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후 칠레는 1929년 페루에 북부 아리카, 타크나 2개 주를 반환하고 대신 타라파카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볼리비아와는 아직도 안토파가스타 주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지속 중이다.
볼리비아로서는 안토파가스타 실함은 뼈아픈 것으로, 단순히 자원만이 아니라 이 전쟁으로 바다로의 출구를 잃어 내륙국이 되었다! 때문에 볼리비아는 안토파가스타 주의 전부가 아니어도 좋으니 바다로의 출구를 일부만이라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칠레는 '그냥 우리 땅 통과하면 되셈. 대신 무관세혜택 ㅇㅇ'로 일관 중이다. 볼리비아의 바다에 대한 의지는 티티카카호라는 호수에서 경비정 1~2척 운용하며 해군이라고 주장하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이 전쟁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아르헨티나도 이득을 챙겼다. 아르헨티나는 칠레와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에 대한 영유권 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칠레가 전쟁의 와중에 남부 마푸체족과도 전쟁을 시작한 걸 보고 참전 위협을 해버린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50년 전 남미 최강 브라질과도 500일 전쟁을 벌여 승리한 전례가 있는, 남미의 3대 전통 강대국[1]이었다. 결국 동시에 3개 방면에서 전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칠레는 얻어도 그다지 득이 될거같지 않아 보이는 파타고니아 지방의 아르헨티나 영유를 인정했다.
이 전쟁 이후 칠레는 남미의 강대국이자 전통적인 해군국으로 성장, 현재도 대표적인 해군국으로 인정받으며, 여전히 페루 및 볼리비아와 경쟁하는 중이다.
-
- [1] 이를 ABC 강대국이라 한다. 아르헨티나(Argentina), 브라질(Brazil), 칠레(Chile)의 머릿글자를 따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