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 대형 서점에서 책을 몰래 가지고 나가려다 발각된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에 대해 '그 책이 재미있나, 혹은 가치가 있나 없나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살펴보려 했던 사람'으로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그를 서적 절도범으로 간주할 것인가. 법적인 판단은 당연히 후자, 도덕적인 판단 역시 선자를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친구가 대형 서점에서 구매한 서적의 전체, 혹은 일부를 전자 복사기를 이용해 '복사'하고 또 '제본'하는 것에 대해 죄악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첫째, 책의 소유주인 친구는 그 책을 구매했거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었기 때문이고, 둘째, 물론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긴 하지만 복사하고 제본하는 행위는 자신만의 감상을 위한 것이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복사'하고 '제본'하는 과정에서 드는 비용 때문에 마치 자신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절판된 책이 꼭 필요한 경우 등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상황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있는 부분이 있다. 복사와 제본을 한 그 사람은 바로 그 책을 대형 서점으로부터 훔쳐서 읽은 사람과 똑같은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책의 판권자, 혹은 저자에게 지불한 돈이 1원도 없다는 점이다. 책은 그 실물이 가치를 지니는 재화인 동시에 그 실물이 담고 있는 내용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지적 재산이다. 복사를 한 사람이 절도범과 결국 같아진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 건축학 개론 > 의 파일 유출 파문은 극장 상영 중인 영화의 파일이 온라인에 유출됐다는 사실 그 자체로서도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더욱 큰 충격이었다.
< 건축학 개론 > 유출 사태에 대한 기사에는 항상 일정한 논리의 리플이 달리고 높은 추천률을 기록했다. 그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나뉜다. 첫째 '영화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극장에서 돈 주고 보기 아까워 불법 파일을 받는 것도 정당하다'는 논리다. 물론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프로덕션의 규모가 작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화를 약탈하는 것이 정당화될 순 없다. 이것은 '어느 식당에서나 음식을 먹어본 후 맛이 없다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한 누군가 '불량 식품이거나 불량 상품일 경우에는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댓글을 단다. 그 제품이 불량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더구나 극장에서 400만 관객이 확인했고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공감과 감동을 표한 영화가 유출됐다는데 그 아래 그런 댓글을 달고 있는 이들의 정신 상태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는 극장에서 돈을 주고 정당하게 본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날린다.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냐 아니냐는 개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훔쳐도 된다'는 논리는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그 영화를 '극장에서 돈을 내고 볼만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면, 당신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그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 IPTV의 무료 상영이나 케이블, 지상파의 방영 때 보면 된다. 혹은 극장 요금보다는 저렴한 정식 다운로드를 받는 것도 좋다. 그런 경로는 그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리로는 '400만이나 본 영화면 이제 벌 만큼 벌었는데 왜 난리냐'는 식의 논리다. 이것은 영화계, 아니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 구조와 논리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논리다. 영화는 극장 상영이라는 1차 판매, 그리고 IPTV와 온라인 스크리닝, 그리고 공식 파일 다운로드나 DVD, 블루레이 출시라는 2차 판매, 그리고 수출과 리메이크 판권 판매 등의 3차 판매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1차 판매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2차와 3차 판매를 포기하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논리다. '어느 휴대 전화 모델이 많이 팔렸다면, 이제 벌 만큼 벌었으니 공짜로 나눠줘라.'라는 말과 같은 논리다.
앞서 말한대로 '서적'은 신체와 접촉할 수 있는 상품인 유형재다. 지금 이 나라의 대중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유형재'를 훔치는 것만이 절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일'을 공유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바로 그 일부 대중들이 '공유'라는 이름으로 약탈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재산이다. 그것은 영화 한 편 당 5억원 이상의 개런티를 받는 유명 배우의 재산이기도 하지만 연봉 2천만원으로 녹음실 한켠을 지키고 있는 스탭의 재산이기도 하며 그 영화의 블루레이를 배달하는 택배 기사의 재산일 수도 있다. 때로 불법 다운로드가 정당하다는 것을 외치는 이들의 논리를 살펴보면 '한국 영화계 전체'에 대한 증오심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산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당신들과 똑같은 시민'들에 대한 증오임을 알아야만 한다.
가장 어이없는 논리는 '불법 다운로드 한 번도 안 받아본 자들만이 돌을 던져라'라는 논리다. '우리 모두 공동의 죄악을 실행하고 있으니 비난할 필요 없다'는 논리다. 이것은 다 같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 같이 침묵하자는 이야기다. 이런 의견에 추천수가 높은 걸 보면 많은 이들이 '모두가 공범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의 의미는 일부 대중이 '죄의식 없이' 혹은 더 나아가 '당당하게' 불법 다운로드를 실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일 뿐이다. 적어도 유출된 영화의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자부심을 가득 담아 댓글을 달지는 말자는 이야기다.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을 공짜로 배포'하는 것이 의롭기 위해선 그 재화가 원래 당신의 것이었어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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