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절대 강자'가 사라졌다. '1박2일'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남자의 자격' 등 영예로운 자리에 올랐던 프로그램들은 현재 부진하거나 부재한 상태다.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프로그램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난 주말 시청률 1위를 기록한 프로그램은 KBS '개그콘서트'(19.3%). 이 외에는 방송 3사를 통틀어 20%를 넘나드는 예능이 없다. 진행자 하차·방송사 파업·포맷 침체로 남녀노소를 아우른 '국민 예능'은 사라지고, 연령·성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프로그램들이 시청자의 관심을 나눠먹고 있다. 방송 예능계의 전반적인 침체 원인은 무엇일까.
KBS '1박2일'
◆'국민 예능' 요소 갖춘 프로그램 부재
'국민 예능'에 등극하기 위해선 재미·감동(인간미)·지속성 3박자를 갖춰야 한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감동까지 주는 프로그램은 드물다. 그런 프로그램이 오랜 시간 시청자를 만나기란 더더욱 어렵다. 수없이 명멸해간 프로그램들 중 이러한 3박자 코드를 갖추고 '국민 예능'으로 꼽힌 프로그램은 KBS '1박2일'과 MBC '무한도전' 정도다.
KBS '남자의 자격'과 MBC '나는 가수다'는 각각 새로운 리더십과 신선한 포맷을 선보이며 감동을 이끌어냈지만 단발성에 그치고 말았다. 지상파 방송의 한 예능PD는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이끌어낸 박칼린의 감성 리더십은 감동적이었지만 시청자를 매료시킨 순간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며 "'남자의 자격'에서 또다시 합창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감동을 경험한 시청자는 불협화음을 이끄는 과정을 처음처럼 신기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MBC '무한도전' SBS '런닝맨' KBS '남자의 자격'
한 자리 시청률로 내려앉으며 혹평받고 있는 '나는 가수다' 시즌2 역시 가수 라인업·생방송 등 바뀐 형식의 문제는 제쳐놓고 애초에 시즌1이 준 포맷의 감동을 재탕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는 평가다. 아이돌 일색의 가요계에서 기성 가수들이 "내가 가수다"라고 외친 신선한 바람은 시청자의 의식을 일깨운 순간 신선함의 유통기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1박2일' '무한도전'은, 캐릭터는 고정하되 환경을 바꿔가면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장점을 유지해나갔다.
SBS '정글의 법칙'
◆불리한 상황에 포맷 침체 맞물려
현재 예능계에는 신선한 바람이 없다. 주말 예능은 '1박2일' '정글의 법칙' '나는 가수다' 등 시즌2의 각축장이 됐다. 그나마 토크쇼에서 이야기 형식에 치유(SBS '힐링캠프')·오디션(SBS '고쇼')·퀴즈(MBC '세바퀴')·게임(KBS '해피투게더')을 버무려 각개약진하고 있지만 열풍을 몰고 오기에는 참신함이 떨어진다.
강호동·김구라 등 걸출한 진행자가 빠진 상태에서 판을 뒤집을 새로운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유재석·신동엽이 명불허전 진행을 선보이고 있으나 구왕(舊王)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국민 예능' 자리에 올랐던 프로그램들의 날개도 꺾였다. 방송사 파업 여파로 '무한도전'은 20주째 결방되며 생사가 불투명해졌고, '1박2일'은 시즌2 방영 초반 프로그램 중단 사태를 겪으며 동력을 잃었다.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처럼 시즌2는 아무리 잘해도 시즌1의 기본을 방어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1박2일' 시즌2는 이런 상황에서 초반 파행 운영의 타격을 맞았다"고 분석했다.
걸출한 진행자와 간판 프로그램의 아성이 무너진 가운데 현재 KBS '개그콘서트'(개콘)와 SBS '런닝맨'이 꾸준한 안타를 날리고 있지만, 해당 프로그램들은 재미는 있지만 프로그램에 빠져들기에는 감동 코드(인간미)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개콘'의 경우 재미와 지속성은 뛰어나지만 온 국민을 '개콘' 열풍에 휩싸이게 할 뚜렷한 인물과 리더십, 감동 코드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인기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프로그램을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에 개편하겠다'고 밝힌 '개콘' 관계자들의 혁신적인 태도가 시청자에게 다른 종류의 감동을 줄지는 지켜볼 일"이라며 "영예로운 자리에 올랐던 프로그램의 시즌2를 잘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새로운 인물·새로운 포맷을 발굴하려는 태도 없이 또 다른 '국민 예능'은 탄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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