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이런 짤이 돌고 있었다.
조선 중종 때,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이는 강상죄를 범했는데, 알고보니 둘이 겸상을 한 것으로 밝혀져 중종이 그냥 봐줬다는 이야기다.
겸상을 삼가는 게 조선의 문화가 맞지만, 겸상한다고 아버지 를 깨도 된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실제로 조선 후기 사진을 보면 겸상은 종종 나오는 일이었고, 할아버지-손자 간에는 겸상도 잘 하고 그런 것 같았다. 물론 아버지-아들간 겸상을 하는 걸 멀리 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죽여도 된다니 너무한 게 아닌가?
근거를 찾아봐야겠다 하고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검색 찬스를 써서 함경도, 중종, 겸상, 강상죄, 패륜 등등 가능한 모든 검색어를 다 넣어봤는데, 겸상 내용은 중종실록에는 찾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왕 찾아본 김에 조금 더 열심히 찾아봤더니 몇 단계를 걸쳐 변형되고 가공된 사건의 진짜 전말이 드러났다.
1. 사태의 원인
네이버 블로그에서 최초의 짤을 발견. 그런데 이 블로거도 다른 곳에서 내용을 퍼왔다
2. 진짜 원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44&aid=0000002105
2005년, 스포츠경향에 연재된 엽기조선왕조실록. 여기에서 ‘이동(李同)의 아버지 살해사건’으로 언급이 된다. 작가는 나중에 이 신문의 연재분을 모아서 '엽기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까지 낸다.
그러면, 이 사람은 어디서 이걸 봤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봤다. 이 작가의 '엽기조선왕조실록'의 참고자료로는 34권 정도의 책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목록을 검토하다 눈에 딱 들어온 게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2> ,정연식, 청년사, 2001. 이라는 책이다. 다른 풍속사 책들도 많이 있었지만, 식문화 관련해서는 아마 정교수님 책이 제일 가깝지 않을까. 그럼 정교수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이걸 보자
3. 원본
인터넷에서 관련책들의 목차를 검색한 뒤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2권'을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책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종 때 황해도 연안의 이동(李同)이란 자는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다가 밥사발로 아버지를 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으나, 무지한 백성이 인륜에 대해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한 탓으로 돌려 관대한 처분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2, 정연식, 청년사, 2001.
겸상 문화를 설명하면서 이동 사건을 언급하고, 이어서 조선시대의 부-자 관계와 교육 방법 등을 차분히 잘 설명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밥사발로 아버지를 쳤다고만 했지, 쳐서 죽였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리고 잘 보면 중종 때 있었던 일이지, 중종이 직접 관여한 사건이 아니다. 또한 중종과 신하의 대화 내용도 없다.
그럼 중종과 신화의 대화 내용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중종이 이 사건에 대해 직접 보고를 받은 게 과연 맞는 것일까? 키워드가 많이 나왔으니 몇 번 더 검색을 해봤다
4. 진짜 원본
http://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91787
빙고.
진짜 원본은 중종 때, '사재 김정국'이라는 황해도 감사가 자기가 겪었던 일을 서술한 것이었다.
그 내용이란
중종 13년에 김정국이 황해도 감사로 있을때, 황해도 연안(延安)에서
이동(李同)이라는 아들이랑 아버지랑 밥을 먹다가 말싸움이 붙었는데,
아들이 이동이 빡쳐서 아버지한테 밥사발을 던졌는데
그걸 동네사람들이 신고해서 잡혀온 것.
근데 당시 법으로는 아들이 아버지를 패면 사형임. 강상의 윤리를 범한 죄임.
그래서 '너 사형' 했더니 '아니 그걸 알았으면 당연히 안팼죠! 몰라서 팬거지!' 하길래
그걸 본 참 선비 김정국이
'아, 법을 가르쳐주지도 않고 죄를 묻는 것은 백성을 속이는 거구나.
일단 법과 도리를 가르쳐주는게 먼저겠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고
그 이후에 실제로 김정국은 백성들을 위한 좋은 책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
겸상을 했으니 죽여도 된다 따위의 가 아니다.
'아버지를 죽여도 겸상했으니 무죄' 가 아님. '겸상이 그렇게 큰 죄' 도 아님.
오히려 '법을 가르치지 않고 처벌만 해서는 안된다'라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애민적인 이야기였다.
실제로 김정국은 그 이후 백성들을 계도하기 위한 책을 많이도 쓴다.
'성리대전절요'
'경민편'
이 사재 김정국의 대표적인 저서다.
근데 이걸 가져다가 '겸상은 아버지를 죽여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일'로 둔갑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걸 사방에서 확대 재생산을 하고 있다.
세 줄 요약
1. 겸상하다가 아버지 때려 죽이지 않았음. 패기만 했음
2. 어쨌든 아버지를 팼으니 법률상 사형인데, 그런 도리 자체를 가르쳐주는 게 우선이라 봐줌
3. 중종이 아니라 황해도 감사 수준에서 정리된 문제
해당 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