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사>
1. "암흑 시대"? 현대 역사학은 중세 초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2. 중세 시대 유럽의 위생과 청결 문화
3. 중세 시대 유럽의 농촌 공동체
4. 중세 초 유럽의 군대
들어가며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이미 학계에서는 그 생명력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중세 암흑 시대론이 많은 비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 로마군의 의료 체계를 논하면서, 이 부분에서는 중세는 암흑 시대 맞다라고 단정짓는 논의도 이와 같다. 여기에는 몇몇 중기 로마사 전공자들의 지나치게 단정적인 서술도 한몫을 한다는 느낌이 있다. 현재 중세사학계의 최신 논의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이 중세에 대해 다소 피상적인 인식으로 자신들이 전공한 시대와 비교를 하는 경향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문학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특정 현상만 뚝 떼서 성급한 비교를 하는 것이다. 한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심층을 함께 보아야 한다. 겉으로 두드러지는 몇몇 요소만 보고 급한 판단을 내리면 오류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로마와 중세를 비교할 때 가장 심하게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는 늘 로마의 최전성기와 중세의 몇몇 혼란기(그리 길다고 할 수도 없는)를 떼서 비교하는 것, 또 하나는 지중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대제국과 일부만 통합한 왕국들의 체계가 같을 수 없다는 점을 망각하고 단순 비교를 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단순한 일반화는 중세뿐만 아니라 근대와 로마를 비교할 때도 종종 보인다. 가령 로마군의 의료 체계를 극찬하는 어떤 글을 보면, 19세기 말의 부상자 회복률과 로마군을 비교하면서 로마군의 선진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러나 이는 근대 군의관들은 로마 군의관들이 알지 못했던 총과 대포에 의한 부상을 치료해야 했다는 점을 망각한 비교다. 더욱이 화약 무기가 발달하면서, 의사들은 고중세의 의사들보다 압도적으로 절단 수술을 많이 해야 했는데, 이것이 당시 환경에서 얼마나 위험한 수술이었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고 중세 군대의 의료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중세의 군대들은 흔한 편견처럼 의료와 위생이 엉망이었을까?
중세의 군대와 의학
중세 의학에 대해 온갖 카더라와 뜬소문이 남발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개별 치료에 대한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탓이다. 중세는 사료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은 시대이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정 문서와 재판 기록 등이나 교회 행정 문서에 해당하는 것이다. 의사의 처방전이나 치료 경과서 같은 것들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병을 앓았던 이들의 자전적 기록도 상당히 간략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치료가 행해졌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만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리가 고대 로마군의 의료 체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세인들이 베게티우스를 비롯한 로마군 의료 관련 기록의 사본을 많이 생산해 놓은 덕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들이 이 사본들을 왜 많이 만들었겠는가? 그냥 재미로 베꼈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Krug 교수가 지적하듯, 중세의 왕과 지휘관들은 부상자에 대한 고대 로마인의 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크레시 전투가 끝난 뒤 에드워드 3세는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을 수습해서 치료하고, 연금을 지급하여 본토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이는 중세 군대에 부상자를 치료할 능력이 있는 집단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중세의 왕들과 정부가 점점 부유해질수록, 종군하는 전문 의료 집단의 수도 늘어난다. 현전하는 중세 정부 문서들에는 실력 있는 군의관을 왕에게 추천하는 문서들이 꽤 많이 남아 있다.
그러면 의료 수준은 어떠했을까? 중세 의학은 근본적으로 갈레노스를 비롯한 고대 의학과 기독교의 몸 이론의 결합이었다. 당연히 현대와 같은 감염 이론은 몰랐으나, 그래도 어떻게 해야 위생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사료 부족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해지고 있는 당시 군의관들의 지시와 주의사항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습한 지역을 피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머물 것."
"물, 음식, 날씨의 변화는 위험하다. 특히 노병보다 신병들이 더 취약함."
"보리로 만든 약탕은 열병을 예방한다."
"배설물은 반드시 진영 밖에서 처리할 것."
"한 장소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 것."
물론 전근대 군대라는 한계상 완벽한 예방은 불가능했다. 전염병과 열병의 경우 약으로 다스려야 했는데, 이는 중세 초부터 병원 시스템을 운영해 온 수도원 기반의 약초학 지식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약초 사용이 수도원과 이후 대학의 이론 수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면, 전투로 인한 부상 치료는 좀 더 실용적인 지식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중세의 외과 의학은 도제식 교육을 통해 이루어졌다. 각 지역에는 외과의 길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대학에서 이론 교육을 받고 나온 이들을 받아들여서 실용적인 치료 기술을 가르쳤다.
당시 의료 텍스트들을 보면 출혈을 멈추는 법, 봉합 수술을 하는 법 등이 매우 상세하게 나와 있다. 봉합 수술도 깨끗한 부상과 더러운 부상을 다루는 방법이 다르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도 상세히 구분하고 있다. 사료들은 많은 면에서 당시의 의학 기술이 결코 초보적이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병원 시스템은 어떠했을까? 사실 중세 의학의 가장 큰 혁신 중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병원'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물론 완전한 근대식 병원은 아니다. 중세 병원은 기독교 신학 이론에 따라 몸의 치료와 영혼의 치료를 병행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중세의 hospital은 환자의 치료뿐 아니라 몸이 쇠약한 노인, 여행자를 위한 요양소를 겸하는 곳이었다. 지금도 상당 부분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답사를 가 보면, 그 건물의 배치와 구조 자체가 사람의 몸과 마음의 건강 양쪽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병원은 중세 초기부터 수도원이 쌓아 온 지식을 기반으로 운영되었으며, 나중에 도시의 부가 축적되면서 각 도시들도 병원들을 운영했다. 이것이 근대 병원의 가장 직접적인 기원이다. 당연히 야전 병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렇다면 의료 기술은 얼마나 효과적이었을까? 사료의 제한 때문에 치료율의 정확한 통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사료와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 특별히 뒤떨어졌다고 볼 이유도 없다. 정말 의료 체계가 엉망진창이었다면 중세 군대가 일정한 수를 유지하면서 작전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십자군 원정 같은 장기 원정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기록에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고위급의 예라 얼마나 일반적인 경우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부상에서 성공적으로 회복된 사례는 상당히 많다. 리처드 1세는 십자군 원정 중에 열병에 걸렸지만 무사히 회복했다. 잔다르크는 전투 중에 어깨와 다리에 화살을 맞고, 머리에 돌을 맞았지만 회복에 성공했다. 헨리 5세는 슈르즈베리 전투에서 얼굴에 화살을 맞는 중상을 입었지만 역시 회복에 성공했다.
고고학적 증거로 봤을 때, 일반 병사들도 의료 체계의 도움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일반 병사들이 대대적으로 매장된 경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중 대표적인 사례인 토우튼 전투 매장지를 볼 경우 몇몇 유골들은 그 전투 이전에 십수 번이나 넘는 부상을 머리에 입었지만, 감염 없이 회복된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유골은 턱에 타격을 입어서 턱뼈가 세 조각으로 부러졌다가 치료된 흔적을 보인다. 이 역시 감염의 흔적 없이 깔끔하게 나았다.
나오며
앞서 말했듯, 고대 로마와 중세는 상황이 다르고 정부 구조도 다르다. 지역별 편차도 크고, 의학은 또 분야별로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로마도 초기, 중기, 후기별로 상황이 같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무시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몇몇 현상들만 뚝 잘라서 비교하는 것이 오류를 낳는다.
중세 의학은 전근대 모든 시대가 그렇듯이 그 시대의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동시에 중세인들은 그 한계 내에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봤을 때, 중세의 의료 체계와 서비스가 특별히 뒤떨어졌다고 볼 근거는 그리 많지 않다.
참고 문헌
- Elizabeth Prescott, The English Medieval Hospital c. 1050-1640 (Seaby, 1992).
- Piers D. Mitchell. Medicine in the Crusades: Warfare, Wounds and the Medieval Surgeon (Cambridge, 2004).
- Larissa Tracey and Kelly deVries (eds.), Wound and Wound Repair in Medieval Culture (Leiden,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