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1897년 개항했다.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일본영사관이 이사청으로 개편되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일본 기관들이 들어섰고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되었다.
1899년 소와 쟁기를 이용해 논갈이를 하는 농부에게 전도하는 선교사의 모습
목포 구락부
1904년 50명이 출자하여 만들어진 일본인들의 위락시설(당구, 바둑, 장기, 마작 시설 구비)로 현 대의동(영사관 부지내)에 위치했다.
1909년 제일여고 옆 수원지에서 만호진 방면으로 바라본 모습. 일본군의 모습이 보인다.
1910년
1910년
목포 공화당
일제 강점기 시절 공화당 건물로 1층은 상업회의소(지금의 상공회의소)가 있었다. 건물은 1911년에 지어졌으면 현 상공회의소 자리이다.
1913년 5월 15일 목포역
목포역 주변 전경
멀리 가운데 보이는 작은 섬이 현 신자유시장 자리이다.
유달산밑에 자리했던 목포 경찰서
현 초원관광호텔 나이트클럽 입구와 일치한다.
1920년 삼학도
< 삼학도의 전설 >
옛날에 무예가 뛰어나고 용모가 준수한 청년이 유달산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유달산 마을 아래 세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유달산의 샘에 물을 길으러 다니다가 무예를 닦고 있는 젊은 청년을 보게 되고 은근히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청년도 역시 세 처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마음이 끌려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무예 수련 중이었으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세 처녀와 마주치게 되자 "나의 무예 수련이 끝날 때까지 세 사람 모두 먼 섬으로 가서 기다려 주면 셋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선택하겠다"라고 하였다.
세 처녀는 그 말을 믿고 꿈에 부풀어 배를 타고 섬으로 떠났다. 이 모습을 본 청년 자신도 세 처녀와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게 되자 배를 향해 활을 쏘아 화살이 배를 침몰시키게 되었다.
배가 물속에 가라앉을 때 세 처녀는 세 마리의 학으로 변하여 하늘로 솟아오르다 슬프게 울며 바다에 떨어져 그곳에 3개의 섬으로 변했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이 3개의 섬 이름을 삼학도(三鶴島)라고 부르게 되었다
목포 곡물상조합 사무소
1922년 옛항동(지금의 여객선터미널 옆에서 수협공판장으로 가는 모퉁이) 부근에 지어졌다.
1929년 유달 해수욕장. 현재의 신안 비치 호텔 자리
1929년 목포 제빙 냉장 주식회사. 목포시 만호동 부근
1930년대 목포역과 소화교
목포 우체국
1930년대 목포 면화판매소에서 면화를 고르는 장면
1930년대 전라남도 물산 공진회 대회장. 현 유달초등학교 자리
1930년대 목포 내항 전경. 현 용당 도선장 부근
1930년 현재의 만호동 모습으로 뒷편의 작은산이 만호진(목포진)이 설치된 자리이다.
1932년 목포 개항 35주년 기념식
중앙 공설 시장 개장
청물시장
철도 병원
현 삼성생명건물 역전파출소 자리
목포해원
만호동에 위치한 목포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휴식처 및 숙박시설
심상소학교
일본인 거주지의 일본인 자녀를 위한 교육시설로 현 유달 초등학교이다.
일제강점기시절 조선인 마을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인 마을
일제강점기시절 상락동
일제강점기시절 공립상업학교
일제강점기시절 현재의 경동 거리
바다가 보이는 목포 시가지. 일본인 거류지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옛 목포 일본영사관
현재 목포 근대역사박물관 별관
은행
일제는 은해을 세운 순서대로 이름을 정하였으며 현 만호동 영란회집 주차장 자리이다.
무안통
일제강점기시절 현 기업은행에서 오거리쪽으로의 모습
무진 주식회사
현 국민은행 자리
목포 형무소 정문
지금은 일로로 옮겨간 목포교도소로 현 일신아파트 옆이다.
목포 형무소 내부 옥사
1957년 과자를 받고있는 목포성덕원 어린이들
1959년 목포양조주식회사(1959년),
현 목포시 호남동 부근, 삼학소주를 생산했다.
1960년대 목포역
1968년 유달초와 제일여고가 보인다.
1968년 유달횟집 골목
1980년 목포역 광장
1980년 구 목포 법원과 마리아회 고등학교
1982년 용해동 목포 경찰서 사거리와 법원앞
1985년 목포 해양 대학교
1986년 산정동과 산정 고등학교
1990년 목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