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1997> 속 윤윤제의 시크하고 무표정한 얼굴… 그동안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배우 서인국의 새로움이 지금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지금 출연하고 있는 <응답하라 1997>의 반응이 대단하다.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시청률도 잘 나오는 것 같고. 요즘 연기를 하면서 행복이란 감정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사랑비>에 이어 두 번째 드라마에서 바로 주연을 맡았는데. 솔직히 주연을 맡기는 싫었다. 부담이 너무크더라. 첫 주연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신원호 감독님(KBS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이끈 주인공)에게도 첫 드라마로 중요한 작품이었으니까. 내가 주연을 맡으면 100% 욕먹고, 작품을 망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나? 그리 유명한 스타도 아니고, 팬층이 두텁지도 않을뿐더러, 배우로서 이름이 난 사람도 아니기에 벌써부터 주연을 맡는다는 건 대중에게 욕먹을 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감사하게 “네가 윤제 캐릭터를 하는 게 정답인 것 같다. 네가 자신감 있게 가면 난 너만 믿고 가겠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믿고 출연을 결심했다.
<사랑비>의 창모로 호평을 받았지 않았나. 첫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다행히 ‘발연기’ 소리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연기를 계속하게 된 것 같다. 3개월 동안 창모로 살면서 그동안 쌓이고 얽혔던 게 모두 한 방에 풀려버렸다. 대리 만족을 느꼈던 고마운 캐릭터다.
그 작품 후 캐스팅 제의를 많이 받았을 텐데. 정말 감사하게도 드라마 <사랑비>가 끝나고 시나리오 13~14개가 들어왔다. 하지만 신원호 감독님의 연락을 받고 모두 뿌리쳤다. <남자의 자격>에 날 출연시켜주시고, 그 후 무대에 오르지 못하던 내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고마운 분이었으니까.
드라마가 첫 방송되고 반응이 좋으니 감독님도 기뻐하셨겠다. 첫 방송이 나간 뒤에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다. 드라마 정말 멋지고, 감독님과 함께해서 정말 영광이라고 했더니, 내부에서 하는 칭찬은 안 듣는다고 하시더라. 하하.
<사랑비>의 창모도 사투리를 쓰고, <응답하라 1997> 윤제도 사투리로 연기를 한다. <사랑비>의 창모는 원래 대본에 사투리가 없었다. 시골 깡촌에서 올라온 아이라는 설정에 내가 감독님께 제안했다. 첫 배역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에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소를 더한 거다. 그리고 이번 윤제는 과거에는 사투리를 쓰지만 현재로 시간이 넘어오면서 서울말을 쓴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인다. 현재 속 연기에서 자칫 사투리가 배어 나오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두 번째 작품이지만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응답하라 1997> 속 윤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 윤제 캐릭터의 특징인 ‘무미 건조함’을 담아내려고 연구를 많이 했다. 우선은 목소리 톤이다. 가능한 한 톤을 높이지 않고 낮은 톤으로 감정선을 잡고 있다. 표정 역시 시크하게, 밝음은 좀 덜어내고 있다. 그렇지만 짝사랑하는 시원(정은지)한테만큼은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는 ‘허당’이어야 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너무 무너지지도, 차갑지도 않은 접점을 찾아 연기하고 있다. 그 선을 찾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아직은 잘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윤제 캐릭터가 멋져 보이는 건 시원을 향한 짝사랑이 서서히 드러나면서부터다. 소위 말하는 ‘케미(chemistry, 남녀 간의 반응)’가 시청자들에게 보인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드라마 시작 전부터 은지와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상대 배우와 스스럼없이 편해져야 연기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친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친하게 지내기 위해 장난도 많이 걸고, 촬영장에서 함께하는 시간도 많이 갖는다. 이제는 친구 같기도 하고 동생 같기도 하다.
스캔들이 날 거란 걱정은 없나? 전혀! 그런 것에 신경을 썼다면 제작 발표회 때 은지랑 손잡고 올라가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tvN의 <택시>에서 은지 보고 사랑한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을 거다.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에 다른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은 19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게임이나 노래로 인기가 높다. 1997년이면 서인국 씨는 갓 열 살을 넘은 나이인데 그때 기억이 나나?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 노래가 있다. 1997년 당시 유행했던 그룹 UP의 ‘뿌요 뿌요’다. 그때 짝사랑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마침 소풍날이었는데 울산문화회관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지더라. “언제라도 네게 잘 보이길 원했고, 너의 눈에 눈과 마주치길 원했고, ~오히려 너의 뒤통수만 보았어.” 신나는 노래가 그날따라 완전 슬프더라. 노래를 듣고 바로 울어버렸다.
아 짝사랑 연기가 그래서 더 실감나는 건가? 티저로 풀린 시원에게 던지는 “만나지 마까”라는 대사와 감정 표현 장면이 정말 인상 깊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 ‘만나지 마까’ 연기 때문에 나에게 윤제 역을 주신 것 같다. 대본 리딩 날 그 대사를 하자 PD님이 손으로 딱 소리를 내며 만족스럽다는 제스쳐를 하셨다. 그전까지 윤제 캐릭터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확실하게 잡지 못했는데 그 순간 ‘아! 이거다’ 싶더라. 내 연기가 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그 연기만큼은 괜찮았던 것 같다.
이번 <응답하라 1997>의 윤제를 연기하면서 가장 욕심을 낸 건 뭔가? 윤제를 연기하면서 내가 중점을 두고 있는 건 생활 연기다. 멋지고 폼 나는 연기가 아니라, 주변에서 볼 법한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같이 출연하는 성동일 선배처럼 말이다.
연기는 계속할 생각인가? 이제 목표는 무엇인가? 노래 못지않게 연기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뭐가 되겠다, 이루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욕심을 낸다면 내 노래, 내 연기를 대중이 좋아할 때까지 하고 싶다. 나도 좋고, 대중도 좋아할 수 있는 상태까지.
에디터 신유미 포토그래퍼 우상희 스타일리스트 윤인영 헤어 & 메이크업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