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Hornblower by C.S. Forester(배경: 1814년 영국 해협)ㅡㅡㅡㅡㅡ
(프랑스 항구 앞바다에서 초계 임무 중이던 영국 해군의 브리그(Brig: 2개의 돛대를 가진 소형 선박) 한 척에서 선상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에 영국 해군성은 혼블로워를 브리그에 태워 현장으로 급파하지만, 때마침 불어온 폭풍으로 인해 혼블로워의 배는 오히려 목적지에서 더 멀어져만 갑니다.)
자신의 운에 만족한다고 생각하며, 혼블로워는 침상에 누워 꾸벅꾸벅 졸면서 백일몽에 잠겼다. 저 서풍 뒤에는 반란군으로 가득찬 브리그 한 척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그는 지금 그 반란선으로부터 시속 1~2마일의 속도로 멀어져 가고 있었지만, 이것이 그의 권한 내에서 현장으로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는 최대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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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최초로 만든 배는 아마도 노를 저어서 움직였을 것입니다. 돛단배가 처음 나온 것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노를 저어 움직이는 것이 돛을 달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아, 사람이 편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쉽다는 얘기입니다. 덕분에,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를 침공하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자웅을 겨루던 시절에도 군함은 모두 노로 움직이는 갤리선이었고, 돛은 어디까지나 '바람 좋은 날'에 쓰이는 보조 동력에 불과했습니다. 지중해의 해군은 18세기 말까지도 여전히 갤리선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그러다가 원양으로 항해를 하면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주동력을 바람으로 하는 본격적인 돛단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실 돛대를 세우고, 이런저런 삭구를 달아 돛을 운용하고, 특히 바람이 뒤가 아니라 앞에서 불어올 때 돛을 이리저리 움직여 바람을 거슬러 가는 기술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본격적인 원양 범선이 해군의 주력이 되면서부터 육군의 장군과 해군의 제독은 확실히 분리가 되기 시작했나 봅니다. 이때부터는 아마추어가 군함을 지휘하기에는 전문성과 난이도가 너무 높아진 것이지요. 그 이전까지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육해군 지휘관의 전문성이 그렇게 구별되지 않았지요. 아테네 해군을 하루아침에 전멸시킨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도 본업은 육군 지휘관이었고, 이순신도 원래는 함경북도에서 여진족과 싸우던 장군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때 당시 영국에서 육군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그저 돈을 내고 장교 계급을 사기만 하면 되었지만, 해군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몇 년간의 고된 미드쉽맨 생활을 거쳐 Lieutenant's Examination이라고 하는 기술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 시험은 삼각 함수 같은 기초는 물론이고 해상 실무 경험이 풍부해야 답할 수 있는 상당히 기술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혼블로워가 미드쉽맨 시절 처음으로 이 Lieutenant's Examination을 치를 때 구두로 받은 질문 내용을 보시지요.
"자네 배가 좌현에서 맞바람을 받으며 진행 중일세, 혼블로워 군.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 도버 해협에서 말이야. 그리고 도버 해안은 북쪽으로 2마일 위치에 있네. 알아듣겠는가? 이제 바람 방향이 4포인트 변하면서 완전히 맞바람이 되었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혼블로워는 결국 이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맙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난 뒤, 혼블로워는 말년에 꿈에도 그리던 제독이 된 다음에 증기선이라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미국 플로리다주 뉴올리언스에서였습니다.
Hornblower in the West Indies by C.S. Forester(배경: 1821년 카리브해)ㅡㅡㅡㅡ
"제독님께서는 증기 예인선의 서비스를 받으셨는지요?"
"아, 바로 그랬소!" 혼블로워가 감탄하며 외쳤다.
"제독님께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겠군요?"
"정말 그랬소." 혼블로워가 말했다. "난.."
그는 그 문제에 대한 그의 모든 생각을 다 말하려던 것을 참았다.
(...중략...)
혼블로워는 영국에서 그가 제독 승진을 기다리며 무보직 상태(Half-pay)로 있을 때, 그 '증기 주전자'가 언급되었을 때 벌어졌던 토론을 기억했다. 대양을 항해하는 배들도 증기 기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사람들이 경멸하며 비웃음을 던졌었다. 훌륭한 항해술의 끝장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혼블로워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생각을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었다.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작자로 취급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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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으로 대양을 항해한 증기선이 1836년에 진수된 HMS Beaver라고 하니까, 혼블로워가 저 대화를 주고받던 때로부터 15년 뒤의 일이군요. 증기선이 대양을 항해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연료 때문이었습니다. 즉, 19세기 초 범선들은 인도에서 영국까지 약 6~8개월 걸리는 기간 동안 전혀 아무 항구에도 들릴 필요 없이 항해가 가능했습니다만, 증기선은 조금 가다가 근처 항구에 들러서 막대한 양의 석탄을 공급받고 증기 기관에 쓸 물을 보충하고 해야 했습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의 모든 항구가 모두 석탄을 산처럼 쌓아 두고 있다가 원하는 모든 배에게 공급해 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걸쳐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였겠지요. 연료를 공급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의 범선은 물과 식량, 탄약 같은 소모품만 아니라면 무한정 항해가 가능한, 요즘의 원자력 추진 함정 같은 존재였겠습니다. (요즘 원자력 잠수함은 물도 만들어 낸다지요?)
특히 저 위에서, '돛을 이용한 항해를 포기하는 것은 항해술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라는 영국 제독 나으리들의 의견은 요즘도 통하는 모양입니다. 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미국 해안 경비대 사관 학교 생도들의 해양 실습 과정을 봤는데, 실무에서는 범선을 탈 리가 없는 그 생도들의 해양 실습은 무조건 범선에서 시작하더군요. 그래야 진정한 항해술을 익힐 수 있고, 다른 바다의 사나이들과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실습용 범선은 독일제로, 2차 대전 때 독일의 항복 이후에 전리품으로 미국이 독일에서 빼앗아 온 것이더군요.)
그러나 결국 범선은 수많은 해군 제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증기선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맙니다. 무엇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그 기동성이 크게 제한된다는 점이 범선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범선에게 가장 나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맞바람? 아닙니다, 바로 무풍 지대입니다. 지구에는 적도나 편동풍과 편서풍이 갈라지는 일정한 위도를 따라서 바로 그 무풍 지대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 무풍 지대를 가로질러 북쪽이나 남쪽으로 항해해야 하는 범선들은 정말 맥없이 무한정 바람이 좀 불어 주기를 기다리며 표류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가장 안 좋은 점이 무엇이었을까요? 지루함? 글쎄요... 다음 구절에 나오는 '갈색 제독'이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The Mauritius Command by Patrick O'Brian(배경: 1810년 대서양)ㅡㅡㅡㅡ
게다가 시간은 아주 충분히 길었다. 그들이 출항할 때의 친절한 바람이 적도 북쪽에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가끔씩 그들은 적도 해류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 쪽으로 천천히 표류하곤 했다. 늘어진 돛을 달고, 정체된 바다 위에 10일간을 계속 머물러 있자니, 프리깃 내부는 깨끗할지 몰라도, 그 주변은 300여 명의 수병들이 배출하는 오물, 즉 고참 수병들이 '갈색 제독'이라 부르는 부유물과 빈 쇠고기 나무통, 각종 껍질과 쓰레기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결국 잭은 아침 수영을 하려면 소형 보트를 타고 0.25마일 가량 떨어진 곳으로 노를 저어 가야 했다. 동시에 잭은 수병들에게 보트들을 내려서 노를 저어 프리깃을 견인하게 했다. 이렇게 한 것은 주변 경관을 좀 쾌적하게 하고, 또 수병들에게 노를 젓는 연습도 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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