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미켈 아르테타 아마트리아인은 1982년 3월 26일 스페인의 해안도시인 산 세바스티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을 무렵 그의 부모님은 아르테타가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르테타의 심장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고, 이 병은 너무나 희귀해서 스페인 내에서도 관련 지식이 있는 의사가 얼마 없었다.
아르테타
"그 수술을 받은 사람이 스페인에서 제가 최초였다고 합니다."
"의사는 제게 수술 이후 스포츠 활동을 할 가능성은 없을거라 말했었죠."
그러나 아르테타는 축구를 향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테타는 그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부모님들은 결국 의료 전문가에게 위험성이 어느정도인지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아르테타
"언젠가 피치 위에서 안좋은 일이 벌어질까바 두려워 하셨어요."
"그러나 제 심장은 튼튼해졌고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커리어의 시작
1991년, 8살 무렵에 아르테타의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산 세바스티안 내 안티구오코라는 아마추어 유스 클럽이었다.
그곳에서 아르테타는 자신의 축구 기술을 연마하고 축구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였다.
또한 사비 알론소와 친분관계를 키운곳도 안티구오코였다. 그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같은 축구클럽을 위해 뛰기로 약속했다.
아르테타와 알론소는 그들의 결정처럼 안티구오코를 위해 뛰며 경기를 장악해 나갔다.
함께 중원에 위치한 그들은 긴 패스 거리와 정확도를 자랑하며 팬들과 상대방의 주목을 독차지했다.
팀에게 많은 승리를 가져다 준 그들은 결국 아르테타가 바르셀로나로, 알론소가 레알 소시에다드로 향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커리어 초창기
감독이 된 많은 선수들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아르테타의 커리어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바르셀로나였는데, 단 한번도 1군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후 PSG와 레인저스를 거쳐 실력을 쌓은 아르테타는 2004년에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했다.
이는 그의 오랜 친구 사비 알론소와 어릴적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알론소는 리버풀로 떠났고, 그 둘은 이후 단 한번도 같은 팀에서 뛰지 못했다.
더욱이, 아르테타는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2005년엔 에버튼으로 이적했다.
에버튼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몇몇 상을 받기도 했다.
영광의 길로
에버튼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테타는 아스날로 이적했고 주장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심지어 팀 동료들은 그를 "코치"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2016년 은퇴 이후 맨시티에서 코치직을 역임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후 맨시티에서 아르테타는 감독 경험을 키워나갔다.
과르디올라는 아스날을 상대하는 경기에서 선발명단을 고르는 일을 맡긴 적이 있는데, 그 경기에서 시티는 2-1로 승리하기도 했다.
아스날을 맡다
2018년 아르센 벵거가 감독직을 사임한 이후 아르테타는 그의 후임으로 고려되기도 했으나 우나이 에메리가 팀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우나이 에메리의 경질 이후 한때 팀의 주장이었던 아르테타는 2019년 12월 아스날의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아직 많은것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거너스들은 아르테타가 선수들의 능력을 120% 가져올 수 있는 적임자라 생각한다.
인간관계
아르테타는 2002년 이후 로레나 베르날이라는 여성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로레나는 스페인 모델, 배우 그리고 TV 진행자로 일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아르테타의 고향 산 세바스티안에서 자랐다.
로레나가 17살에는 미스 스페인에 선정되었고 미스 월드 콘테스트에서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아르테나는 로레나가 첫 여자친구였고 8년간 사귄 끝에 2010년 7월 17일 결혼에 성공했다.
이 부부 사이에는 가브리엘, 다니엘, 올리버라는 세 아들이 있다.
https://lifebogger.com/mikel-arteta-childhood-story-plus-untold-biography-fa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