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마리(Kondomari) 학살
1941년 5월 독일군은 공수부대를 이용해 그리스의 크레타섬을 전격 침공합니다.
당시 크레타섬은 영국군과 그리스 민병대가 지키고 있었지만
독일의 정예 공수부대 '팔슈름야거'는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크레타섬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이 투입한 수송기의 절반이 영국군의 대공사격에 파괴당하고
'팔슈름야거' 또한 1만 6천명 중 6600명의 병력손실을 입는등 괴멸적인 피해를 당하자
히틀러는 대규모 공수작전에 대해 사실상 단념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갑전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공수작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예..
남아있던 영국군 병사들은 결국 독일군에게 항복
2차 세계대전 당시 순박하던 지중해의 크레타섬 주민들은 난생처음 하늘로 부터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그들의 보금자리를 침입하는 침략자들을 보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크레타섬 주민들은 그들의 주요 작물인 올리브 재배밭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들의 영토로 침공해 들어온 독일군 공수부대에 맞서 집안의 농기구 및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들고 나가 올리브밭에 떨어져 낙하산줄이 나무에 감겨 꼼짝 못하게 된 독일군 공수부대 병사들에게 다가가서 사정없이 내리쳐 죽였습니다.
독일군의 낙하작전 당일 올리브 나무밭 가지에 걸린 수십명의 여러 독일 공수부대 대원들과, 착지한 후에 장비를 찾아 무장한 형태로 몸을 가누기 전에 달려들어 낫처럼 생긴 칼로 독일군들의 목을 절단시키며 살해시키기도 합니다.
또한 독일 공수부대 팔슈름야거 대원들이 수송기에서 강하후 육상에 착지된 된후 낙하산에서 줄을 풀기전에 덮쳐
칼로 목을 베거나, 찔러 죽이거나, 곤봉모양의 지팡이로 가격하여 살해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독일군들에게 민간인들이 광범위하게 저항전을 펼친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고 이것은 그야말로 그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독일의 공수부대 팔슈름야거는 크레타 섬에 낙하한후 작전지역의 범위를 벗어나 사분오열되어 흩어진 대원들의 진열을 다시 갖춘뒤 민간인들에게 격렬한 복수의 적개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팔슈름야거 대원들을 살해한데 대하여 독일 공군 슈투덴트 상급대장은 이들에 대한 보복살인에 돌입하게 됩니다.
독일군은 크레타인들이 계급장을 붙인 군복을 착용했거나 민간인과 식별되지 않은 형태의 복장으로 독일군에게 공격을 가해왔기에 그들을 게릴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일 공수부대 대원들을 살해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에게 보복차원의 집단 총살형을 실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