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2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4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5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6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7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8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9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10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11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12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13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14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실제 역사와 다른 각색이 있을수 있습니다.
왜군은 330여척 가까이 되는 함선들을 이끌고
남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왜군은
이순신이 다시 지휘관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이미 조선 수군은 궤멸된 상황
겨우 남은 12척만 마무리 짓고 한강으로, 한양으로 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12척의 소규모 함대가지고는 그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터,
그가 설령, 바다의 귀신이라고 불리는
이순신이라 할지라도...
결전의 날 아침
1597년 9월 16일
이른 아침 망군이 보고하기를 "무려 200여척이 넘는 적선이 명량을 거쳐
진치고 있는 곳으로 곧장 온다고 하였다.
- 난중일기 中
이순신은 이른 아침 적선이
조선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12척을 이끌고 명량 해협(울돌목)으로 출진한다.
출진해 도착하니,
적의 선봉 함대 133척이 이미 도착하여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12척 VS 133척
아니,
12척 VS 수백척
12 ships against hundreds
도저히 성립이 되지 않는 숫적 열세에
평소 용감히 싸우던 장수들까지도 모두
사기를 잃어버린채로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현장경험이 많은 장수들은
이 곳이 죽을장소라는 것을, 이 곳이 사지(死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두려움이며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강력한 의지 없이
범인은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좁은 명량해협을 왜선이 까맣게 뒤덮은 것을 보고 아연실색해 있는
조선수군의 장수들에게
이순신은 전진명령을 내린다.
" 전진 깃발을 들어라 ! 전 함대 전진하라 !!"
대장선인 이순신의
솔선수범 돌격과 포격으로 시작된 명량해전,
허나, 돌격한 것은 이순신의 기함 뿐이었다.
이순신의 부하장수들은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좁은 명량 해협을 빽빽히 채운
유래없는 대함대의 위용에
뒤로 슬금 슬금 물러났다.
역사상 이렇게 극적인 순간이 또 있을까 !
이순신이 자리를 지키며 후퇴않고 싸우는 40분 동안은,
1척 VS 133척
1명 VS 적군 전원
그 강대한 적에 맞서 싸우기 위해 서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 이순신 뿐이었다.
One man stood against All odds
그 순간만큼은
오직 단 한 사람 만이
모든 적군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
오직 배 하나의 분전,
그 믿을수 없는 활약으로 진격이 소강상태가 되자
이순신은 그 부하장수들이 오지않자 재차 그들을 불러
호출명령을 했고
김응함과 안위가 탄 배를 불러 꾸짖었다.
"네가 억지부리다 군법에 죽고 싶으냐?"하였고, 다시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싶으냐? 물러나 도망가면 살 것 같으냐?"고 했다.
- 난중일기 中
결국 두사람의 함선이 공격대열에 합류하자,
다른 부하 장수들도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이순신의 초요기(대장이 장수를 부를때 씀)를 보고 참전하였고
여기에 김억추의 배까지 도착하여
총 13척이 되었다.
목숨을 건 싸움
임진왜란의 운명을 결정지을 싸움이
바로 지금,
명량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판옥선이 왜선보다 견고한 점을 이용한 충각전술과
가용할 수있는 사격 무기를 총 동원한 함포전술을
상황에 맞게 써가며 귀신 같이 싸웠다.
오후가 되자 조류가 바뀌어 일본군에게 역류현상이 일어나,
좁은 해협에서
배들이 급하게 떠내려가고 휘몰아치며 부딪혔다.
하루동안의 국가의 존망,
양국의 운명을 건 싸움은
오후 무렵 일본군은 후퇴의 바람을 타고
퇴각하게 되면서
믿을 수 없게도, 이순신의 조선군이 승리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하였던가..
이 울부짖는 바다에서 이순신이 거둔
이 승리는 기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승리였다.
적선 31척이 완파, 다수 적선을 부쉈으며
3천명이 넘는 왜군을 해저로 가라 앉혔다.
적장 1명을 죽이고,
지휘관 도도 다카도라 조차 부상을 입었다.
반면
조선군의 피해는
판옥선 13척 전선이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으나
전사자는 2명, 부상 3명 뿐이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이 힘든 싸움을 이렇게 기록했다.
"실로 천행이다. "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순신의 판옥선 12척이 명량이 굉장히 좁은 해협이니 지키는데,
이 명량(울돌목)은 고려시대 부터
물살이 험해서 굉장히 해전 접전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세계에서 5번째로 꼽을 정도로 조류가 빠른 장소인 이 울돌목은
너무 물살이 빨라서,
여기 물길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타면 휩쓸려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그리고 명량이 좁으니,
일본군이 큰배를 집어 넣을수가 없었다.
정유재란 일본 수군의 비밀무기는
아타케부네 라고 불리는 대형 안택선을 만들어
판옥선과 1:1싸움을 시키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4번째 짤의 유달리 큰 배가 그것이다.)
이순신은 물길을 알았기 때문에 요소에 자리를 잡고
주위로 흘러가는 왜선에 사격하다. 돌격했던 것이다.
반면 ,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일본군이 여기서 중요한 실수를 한 가지 범한다.
사실 그 동안 일본군도 6년,7년동안 너무 오랫동안 참았다.
금방 이길 것같은 전쟁을
이렇게 오랜 기간.... 고생하고 있다니
마침내
이제는 다 이겨서 ,
드디어 이번 한번만 이기면
전쟁을 승리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딱 한번만 이기면.....
이왕 이렇게 된 것, 이 것만 이기면 전쟁이 끝난다.
" 천명이 죽든, 만명이 죽든 밀어 붙여 ! "
밀어붙여 해결하자라며
막 밀어 넣은 것이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거세 멈추지를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함선들은
자리를 잡은 이순신의 사격을 맞았던 것.
일본 장수는
빨리 중단을 시켰어야 했는데
여기서 승부를 내자며 계속 밀어넣어 준 것이다.
전쟁터에서 희생이 많이 나는 전투가
대개 이런 경우이다.
참혹한 패장들의 오판,
" 요것만 해결하면 된다. "
"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해결해야 된다 "
라고 하면
갑자기 그때부터 생각없이 무작정 덤벼드는 것.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330여 척이 12척과 싸우는데,
당연히 일본수군도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이순신 때문에 수륙병진의 계획이 다시 한번 무산된 상황
명량대첩은 정유재란의 판도를 바꾼
결정적인 전투였다.
명량해전이 끝난 후
명량에서 대패하여 분노한 왜군은
분풀이로 이순신의 아들 면을 습격하여 죽여버린다.
이순신은 어머니에 이어, 아들까지 자신때문에 죽었다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정유년 10월 14일
새벽 2시 쯤 ,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으로 가다가
말이 헛디뎌 냇물 가운데로 떨어지긴 했으나 거꾸러지진 않았는데,
막내아들 면이 와서 끌어안는 듯한 형상이 보이더니 깨었다.
(중략)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먼저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긴장되고 조급했다.
대충 겉봉을 뜯고 편지를 보니, 겉면에 통곡이라고 쓰여있어
면의 전사소식을 알게 되어 나도모르게 간담이 떨어지고 목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도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 찢어지는 듯 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떳떳한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하여 이치에 어긋났단 말인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 <난중일기> 中
한편 임진왜란,
조선군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돌아다니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염병이었다.
23전 23승,
노량해전을 제외한 이순신 장군의 모든 전투동안 전사자가 200명이 채 되지 않았으나,
전염병으로 전사한 사람만 몇 천명이 되었다.
전체 수군의 30%가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사람들을 모아놓으니 인플루엔자 같은것이 돌았는데,
군인들에게만 도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도 전염병이 돌며 참혹한 피해를 낳았다.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강도가 쎄졌다.
그리고 수군은 특히 전염병에 취약한 병과이다.
밀집된 공간, 높은 습도, 흔들리는 배에 살다보니 휴식을 취하기도 쉽지않고
당시 군량이 없어
수군들도 빈민 수준으로 밖에 못먹고 싸웠다.
그러니 쉬지도 못해 먹지도 못해
면역력의 결핍이 일어나, 전염병에 취약했고
전염병으로 많이 죽었다.
명량 이후
명의 수군과 합류하게 된 조선수군은
다시 군을 재정비하기 시작한다.
이순신은 지원군인 명의 도독 진린에게
절대 굽히지 않거나 공을 양보하면서
당근과 채찍전략으로
진린을 구워삶아 자신의 팬으로 만든다.
진린은 황제국 지원수군의 지휘관으로써 오만했으나
이순신과 함께 하는 기간 진심으로 그의 팬이되어
빛....
제후국 장군인 이순신에게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부르는 하인이 쓸 법한 극존칭을 써가며
이순신을 예우한다.
그리고 이순신에게 같이 명나라로 가자고 꼬셨다.
이순신보다 나이많은 진린이 이순신을 부른 "노야"라는 호칭은
"나으리, 주인마님"이란 뜻으로 하인이 쓰는 말이었다.
(물론, 무리할 필요가 없는 명나라 였기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함..)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 1598년 진린이 선조에게 올린 글
결국 1598년 8월,
통일 일본의 맹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을 하자,
일본군은 몰래 철수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한다.
조선이 임진왜란에서 승리한 것이다.
들어올때는 니맘대로 였지만 나갈떈 아니란다
허나 , 일본군이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것을 허락치 않을 사람이 있었으니...
그 남자의 이름은
이 순 신 이었다.
장부가 세상에 나서 나라에 쓰이면,
목숨을 다해 충성을 바칠것이요
만일 나라에 쓰이지 않으면
물러가 농사 짓고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 이순신
"此讐若除 死則無憾 차수약제 사즉무감"
" 이 원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
- 이충무공행록 中
-다음편에 계속
재밌게 보셨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