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학력고사 1세대 82학번임
당시 학력고사에서 285점? 287점? (본인이 헷갈려함...) 을 받았다고 함
그럼 당시 그 점수로 어디를 갈 수 있었을까?
서울대 법대 빼고는 전부 다 진학 가능했음.
중앙대 법학과는 250점 중후반 수준이라 거진 30점을 하향지원한 거임.
그럼 왜 그랬을까?
82년도 학력고사는 학력고사 1세대임
그 이전엔 전국적으로 예비고사를 보고 대학별로 따로 본고사를 봤음
마치 지금 논술전형 보듯, 대학마다 따로 시험을 출제했었음
그러니까 전국 통일 시험인 예비고사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물론 예비고사 폐지 직전엔 점점 예비고사도 중요해짐)
그런데 이제 이런 제도를 싹 없애버리고
전국적으로 통일된 시험인 학력고사를 봐서 그 점수를 가지고 대학을 지원하게 됨.
그러니까 이제 학력고사 점수로 대학을 줄 세울 수 있었던 거임.
예전엔 서울대가 높고 그다음 연고대고 그다음 쭉쭉쭉... 뭐 이런 인식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점수로 바로바로 서열화되지는 않았음.
그러나 이제 학력고사 점수로 바로 줄이 세워지기에, 대학 서열에 더 민감해진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을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을 세웠음.
바로 '돈' 으로 꼬시는 방법을 씀
연고대 같은 경우는 차마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학생을 끌어 갈 생각은 없었고
당시에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들이 주로 이렇게 돈으로 학생들을 데려갔음.
그리고 공부 잘 하는 학생을 끌어오기 위해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금액인 월 20만원을 제공함
(중앙대 선호장학생)
당시 월 20만원이면 대기업 대리 수준
대기업 월급 받으면서 학교 다니는거임.
당시 너무나도 가난한 이재명에게는 엄청난 조건일 수밖에 없었음
이재명은 이렇게 월 20만원 받고 학교 다니면서 형의 수험 비용을 지원해줌 (대성학원)
형도 마찬가지로 83학번 290점으로 서울대 하위과~연고대 상위과 정도의 점수를 받고
건국대 경영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 회계사가 됨.
또한 이재명은 이러한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사법고시를 만 22세에 합격함
(당시 사법고시 정원 300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