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말할수록 불안해지고,
그리움은 말할수록 그리워지고,
아픔은 말할수록 아프게 된다.
불확실함 탓이다.
나는 나의 불안이 불확실하고,
그리움이 불확실하고,
아픔이 불확실하다.
아니, 내가 나라는 것이 가장 불확실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데,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침묵뿐이다.
나는 점점 아무도 아닌 것 같다.
지나침이 존재를 증명할 때가 있다.
지나치게 사랑해야 사랑 같고,
지나치게 고통스러워해야 고통 같고,
지나치게 두려워해야 두려움 같고,
지나치게 슬퍼해야 슬픔 같고,
지나치게 분노해야 분노 같을 때가 있다.
점점 더 큰 소리를 내는데 점점 더 들리지 않게 될 때가 있다.
무엇이 진심이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영원토록 좁힐 수 없다면 그것은 영원과 같다.
누군가와 시제가 서로 다르다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말을 한다 해도 들을 수가 없다.
쓸쓸한 독순의 순간만 남는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사랑한다 말한다 해도.
내부의 상처는 외부로 드러난다.
상처 입은 사람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된다.
그러지 말자고 마음먹지만 칼날 쪽만 잡게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하던 방식으로 사랑하고,
믿음을 구하지 못하던 방식으로 믿게 된다.
흉터로 가득한 상처 뒤로 숨어, 사라진 통증들을 복기해낸다.
더 센 상처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
그렇다면 어떤 수가 있겠나, 묻고 있지만.
차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들도 언젠가 사라지겠지.
빗방울을 따라가던 내 손가락도, 그걸 바라보는 내 눈동자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도 사라지겠지.
열 번 백 번 같은 시작이 와도 같은 것을 택하는 사람들,
언제까지나 어쩔 수 없는 사랑들.
모두
김박은경 사진 산문집 홀림증
안에서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인지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봤었어
이 글 속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여시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기를 바라
2012년, 그러니까 1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마음을, 기억을 자꾸만 건드리고
사람에게 기꺼이 약해지고 싶게 만드는
시인이 쓴, 아름다운 문장이 많은 산문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