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원도 영리병원 설립 법안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영리병원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전국으로 확대될 것이며 결국 의료 공공성을 해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2.10.5. ⓒ뉴스1/figcaption>/figure>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다. 외부 투자자가 병원 운영으로 생긴 수익금을 회수하려 하기에, 영리병원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운영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 우리나라 의료법만 보면 영리병원 개설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나라에는 영리병원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이미 외국인 투자자를 통해 국내 일부 지역에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실제 이를 근거로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서 영리병원을 세우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찬진 변호사(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는 7월 4일 ‘제주 녹지국제병원 문제 해결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제주 영리병원 설립 근거가 된 법의 변천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처음 영리병원 도입에 관한 법은 2002년 말 ‘경제특구법’이 개정되면서 생겼다. 다만, 처음에는 “외국인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외국인 전용’이라는 분명한 제한을 두는 법이었다. 내국인 진료만큼은 불허한 셈이다. 그런데 이 제한이 2005년 법 개정으로 슬그머니 풀린다. ‘외국인 전용’을 “외국인이 개설하는 의료기관”이란 뜻의 ‘외국의료기관’으로 단어만 슬쩍 수정한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다. 이로써 경제자유구역에 내국인 진료도 가능한 영리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원희룡 제주지사가 공론조사를 무시하고 개설을 허가하면서 논란이 된 녹지국제병원 사태의 발단이 됐다. 당시 제주지사였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영리병원 개설을 허가해줬다가 탄핵여론 들끓자 허가를 취소했으나, 소송으로 번지면서 제주도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원희룡 지사는 지사직을 관두고 대권을 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영리병원에 관한 찬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아 논란이 됐다. 다른 후보들은 명확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유독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정책본부장으로 있는 윤 후보 캠프만은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사실상 찬성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했다. 당시 제주MBC는 윤 후보가 “법원의 판결 취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사실상 영리병원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정부 출범 4개월여 만에 윤석열 정부의 진심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법안이 여당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발의됐다. 지난 9월 13일 발의된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해당 법안에는 도지사의 허가를 받으면 의사나 의료법인이 아닌 외국인도 강원도에서 외국의료기관을 설립·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이렇게 설립된 외국의료기관은 의료급여법에 따른 의료급여기관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점도 명시됐다.
쉽게 말하면, 도지사의 허가를 받은 외국인은 강원도에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란의 법안을 발의한 여당 국회의원의 이름은 박정하(강원 원주시갑),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랜 ‘깐부’ 사이다. 원희룡 장관이 제주도지사 재임 시절 정무부지사로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또 공교롭게도 박 의원의 소속 상임위원회는 국토부를 감시하는 국토교통위원회다.
박정하 의원은 지난 5월 14일 페이스북에 "오랜 깐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을 축하합니다"라며 원 장관과 악수하는 사진을 올렸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우리는 제주도에서 도지사와 부지사로 찰떡호흡을 맞췄다"라며 "국토부 원희룡-원주 박정하 핫라인으로 원주의 원대한 꿈을 완성하겠다"라고 썼다. ⓒ박정하 의원 페이스북
이에, 일각에서는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 논란에 이은 강원도 영리병원 논란은 단순히 박 의원 개인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보궐인데다 초선인 박 의원이 두 번째로 낸 법안이라는 점을 짚으며 “외국의료기관 설립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유치 및 산업단지 조성 근거 마련, 국제학교 설립·운영 근거 마련 등 강원도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시장화하는 게 다 포함돼 있다. 개인이 하는 게 절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우려되는 지점은 제주도 영리병원의 포문을 열었던 입법안과 판박이라는 점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시절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제주도를 혼란에 빠뜨린 녹지국제병원도 같은 배경에서 도입이 시도됐다. 현행 제주특별법 제307조와 박 의원의 법안 제11조의3의 원문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외국인투자 촉진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외국인을 말한다)이 설립한 법인은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제주자치도에 의료기관(이하 ‘외국의료기관’이라 한다)을 개설할 수 있다. 이 경우 외국의료기관의 종류를 ‘의료법’ 제3조 제2항 제3호에 따른 병원·치과병원·요양병원·종합병원으로 한다.” - 제주특별법 제307조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외국인투자 촉진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외국인을 말한다)이 설립한 법인은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강원자치도에 의료기관(이하 ‘외국의료기관’이라 한다)을 개설할 수 있다. 이 경우 외국의료기관의 종류는 ‘의료법’ 제3조 제2항 제3호에 따른 병원·치과병원·요양병원·종합병원으로 한다.” - 박정하 의원 법안 제11조의3
두 법안을 비교하면 사실상 ‘제주자치도’가 ‘강원자치도’로 바뀐 것 외에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박정하 등 11명의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9월 13일 영리병원 논란의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