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추천 순서는 랜덤입니다.
조혜은
눈 내리는 체육관

나는 항상 인생을 망치는 꿈을 꿨어요.
아름답지 않아서,
더 이상 아름다운 것에게 사랑을 구할 수 없을 때는
구걸하는 기분으로
누구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 더러운 기분으로
내가 가진 환멸을 검열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나를 보았다.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사랑의 흰색에 대해 쓰면서
네가 얼마나 내 뺨을 창백하게 했는지
내 사랑
한 줄로 된 현악기
울리거나 멈추거나
나도 알아
내가 단조로 ······ 운 밤이라는 거
주하림
여름 키코

영원에 대한 감정은 영원을 빚을 수 없고
영원에 대한 기대는 영원만을 향할 테니
그저 너를 지켜본 시간들,
기억에 간신히 남은 희미한 여행객 같아
생각 속에선 모든 것이 흔들렸어
푸른 물감을 떨어뜨리면 퍼져가는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최문자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이별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우리가 포기한 사랑은 어떤 생물인가
사랑을 포기해도 얻어지는 세상은 없었지
그렇다고 꼬박꼬박 밟고 내려가는 계단 같은 것도 없고
이혜미
흉터 쿠키

쿠키를 찍어내고 남은 반죽을
쿠키라 할 수 있을까
뺨을 맞고
얼굴에 생긴 구멍이 사라지지 않을 때
슬픔이 새겨진 자리를
잘 구워진 어둠이라 불렀지
분명하고 깊은 상처라 해서
특별히 더 아름다운 것도 아닌데
마음이 저버리고 간 자리에 남은 사람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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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권 모두 2022년, 올해 나온
여성시인의 시집이야
다채로운 시선과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시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거야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인지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봤었어
이 글 속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여시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기를 바라
마침내 시집으로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