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303243
#대학생 A씨(23)는 아빠에게 햄버거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가 '아차' 했다. 무인단말기(키오스크) 이용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드리려 영상통화를 건 A씨는 땀을 잔뜩 흘리며 주문에 애를 먹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A씨의 설명에도 아빠는 결국 "못하겠다"며 포기했다. A씨는 "내가 직접 나가서 주문했다. 아빠가 50대 초반이시고, 친구분들 사이에선 나름 얼리 어답터신데…. 속상했다"고 전했다.
점원 대신 기계가 손님을 맞는 세상이 됐다. 주문·결제를 진행하고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키오스크는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공항, 영화관 등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
거센 '무인화'(無人化) 바람에 '디지털 문맹'들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정보 기술의 변혁이 급속도로 이뤄지며 디지털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생겨난 것.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또 다른 장벽을 만드는 상황이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 '디지털 소외'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항 카운터에서 탑승권 발권하면 수수료 3000원…"기계 사용 못 하면 돈 더 내라는 거냐"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지난 1일부터 광주와 무안공항을 제외한 국내선 공항 카운터에서 탑승권을 발급하는 승객을 대상으로 1인당 3000원을 부과한다. 3일까지 시범적으로 운영되며, 4일부터 본격 유상서비스로 전환된다.
수수료 부과 대상은 '모바일 탑승권이나 키오스크 이용이 가능하지만, 카운터에서 탑승권 발급을 희망하는 고객'이다. 유아동반승객, 교통약자, VIP승객 등은 수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직원 도움이 필요한 승객에겐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수수료 제외 대상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상태다.
제주항공은 모바일과 키오스크로 수속을 진행해 '스마트 공항'을 구현하겠다는 취지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무인 발권 체계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 등의 불편이 예상돼서다. 직장인 L씨(31)는 "카운터 발권을 기본으로 하고, 키오스크를 이용하면 할인을 해주든가 해야 한다. 모든 연령대가 키오스크를 잘 사용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 기계 사용이 서투른 분들에게 돈 더 내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외식업계도 무인화 흐름이 거센 곳 중 하나.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비대면 서비스화'를 '2019 외식소비 트렌드'로 선정했다. 무인화·자동화의 확산에 따른 키오스크, 전자결제 등의 발달로 외식 서비스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 전문점의 경우 전체 매장 중 60% 이상에 키오스크가 도입됐다.
금융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은행 지점과 통장은 점차 줄어들고, 인터넷·모바일 뱅킹이 주가 되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창구를 찾는 고객보다 낮은 이체 수수료를 내고, 높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밥 못 먹고, 버스 못 타고…무인화 바람에 소외된 사람들
문제는 무인화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특히 노년층에서 디지털 소외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8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의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63.1%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스마트폰 보유율도 68.4%로 일반 국민(91%)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디지털 격차는 자연스레 소비의 세대 차로 이어지고 있다. 키오스크 등 기계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은 소비를 주저한다. 일상과 밀접한 곳에서 무인화가 이뤄지며 생활의 질에도 격차가 생기는 상황이다.
직장인 K씨(27)는 "얼마 전 버거킹 가서 주문하는데 옆에서 어르신이 어떻게 하실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계셨다. 직원들이 본체만체하길래 내가 메뉴 선택부터 결제까지 다 도와드렸다. 그 어르신을 도와드리고 나니 다른 어르신도 '나 좀 도와달라'고 하셨다. 옆에 사용 방법이라도 써 붙여 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음식점뿐만 아니라 영화관, 마트, 기차역 등 업계 곳곳에서 키오스크가 자리 잡으며 디지털 소외 계층의 불편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주부 K씨(59)는 "키오스크와 스마트폰 이용법을 잘 몰라서 영화관에 가서 직접 표를 끊는 편"이라면서 "그런데 요즘 기계는 늘고 표를 끊어주는 직원은 줄어서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기계 이용법을 물어보고 싶어도 직원들이 다 바빠 보여서 설명해달라고 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