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추천 순서는 랜덤입니다.
어찌 할 수 없는 것들로 얽힌 이 삶을 잔잔히 위안하는 소설
양귀자모순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짙은 장마와 같던 소설을 쓰던 작가의 다정하고도 아늑한 산문
김애란잊기 좋은 이름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사랑의 고독하고도 찬란한 시간을 버티는 여성의 소설
유진목디스옥타비아
나는 먼 훗날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살아오는 동안에는 태어날 때 내 몫으로 주어진 불행을 감당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뒤에는 없어도 좋을 나쁜 일들이 나를 찾아왔다. 불행은 행복이 마련해둔 빈 자리에서 살아간다. 그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글을 쓰다 말고 고개를 들어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 앞에 살아 있고, 그는 그대로 내 곁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랑과 죽음을 모두 쥐고 있는 한철 가을의 꿈 같은 시
박은정 밤과 꿈의 뉘앙스
우리는 다행이라고 말한 적 있다
무엇이 다행인지도 모른 채 다행이라서
사람처럼 먹고 자고 다시 넘어질 각오로
달력 한 장을 찢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되어
서로의 닮은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아직 오지 않은 사랑을 죽인다
엉망으로 취한 시간에는
모두들 가여운 짐승이 되기도 하는 거라
한 병의 위스키를 마시면 실패하지 않고
기꺼이 이상해지는 운명의 카드가
그의 호주머니에 있다
사랑의 환상이 마른 낙엽의 부서짐 같으면서도 낭만적인 소설
은희경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으나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 주변의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상을 버티는 힘과 사랑을 말하는 시인의 포근한 에세이
김소연어금니 깨물기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았다는 기억은 선연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든든해하는 것은 할머니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기억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할머니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
나와 타인 사이의 짙고도 지울 수 없는 감각
김행숙타인의 의미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처럼.
문틈 사이로 들이치는 낯선 가을 바람을 다정하게 덮어줄
구병모한 스푼의 시간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시인이 포착한 쓸쓸한 사랑의 우묵한 형상들을 담은 산문
김박은경 홀림증
내부의 상처는 외부로 드러난다.
상처 입은 사람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된다.
그러지 말자고 마음먹지만 칼날 쪽만 잡게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하던 방식으로 사랑하고,
믿음을 구하지 못하던 방식으로 믿게 된다.
흉터로 가득한 상처 뒤로 숨어, 사라진 통증들을 복기해낸다.
더 센 상처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
그렇다면 어떤 수가 있겠나, 묻고 있지만.
유년의 상처를 위로하며 나로서 설 수 있는 용기가 되는
최진영내가 되는 꿈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나를 상상한 적도 없다. 과거가 아깝다. 살아갈 날보다 내가 분명히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까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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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열 명의 우리나라 여성작가를
열 권의 책을 소개했어
쌀쌀한 가을,
그 날씨 안에 놓여 차분히 음미하며 읽기 좋은 책들이야
때로는 고독하게 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만들어 줄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인지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봤었어
이 글 속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여시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기를 바라
마침내 책으로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