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홍범도…비구니 출신 아내 ‘불 고문’ 견디며 남긴 말
한국 주둔 일본군 북청수비구 사령관 야마모토 대좌는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폭도’들의 귀순 공작을 강화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 군사작전만으로는 그들을 진압하기 어려웠다. ‘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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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귀순 권유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끔찍한 짓이었다.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의병 지도자를 전향시키려는 술책이었다. 해방운동의 투사를 정신적·정치적으로 파멸시키려는 행위였다.
홍범도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함경남도 북청군 인필골, 깊은 산중 마을이었다. 처가 동네였다. 늙은 장인 장모와 함께, 아내와 두 아들이 살고 있었다. 일본군은 그 마을을 급습했다. 그리하여 홍범도의 아내와 17살 맏아들 홍양순을 토벌대 주둔지로 압송해 왔다.
홍범도의 아내 이씨 부인은 거센 강압을 받았다. 산중에 웅거한 남편 앞으로 투항을 권하는 편지를 쓰라는 거였다. 임재덕 순사대장은 아예 문안까지 일러줬다.
“일본 천황에게 귀순하면, 당신에게 공작 작위를 하사한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에게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자식들도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는 차라리 글을 쓸 줄 모른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씨 부인이 글을 깨쳤다는 사실을 저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응할까, 거절할까. 두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쩌랴. 고초를 각오해야만 했다. 이씨 부인은 결심했다. 거절의 뜻을 단호히 표명했다.
그날 아내가 입에 담았던 말을 홍범도는 누군가에게서 전해들었던 것 같다. 평생토록 그 말을 잊지 않았다.
“계집이나 사나이나, 영웅호걸이라도 실 끝 같은 목숨이 없어지면 그뿐이다. 내가 설혹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더러 시킬 것이 아니라 너희 맘대로 해라. 나는 아니 쓴다.”
이렇게 말했노라고, 노년의 홍범도는 또박또박 기억해냈다.
이씨 부인은 혹독한 보복을 당했다. 고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만적인 폭행이 쏟아졌다. 발가락 사이에 불붙인 심지를 끼워놓는 등,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됐다. 거듭되는 악행은 이씨 부인을 반죽음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래도 그녀는 끝내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한 회상기에 따르면, 그때 이씨 부인은 스스로 혀를 끊어 고문에 맞섰다고 한다. 처참했다. 그녀는 벙어리가 된 채 갑산 읍내로 이송돼 옥에 갇혔다. 하지만 머잖아 고문의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출생연도가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향년을 정확히 댈 수는 없지만, 아마 30대 후반이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이 분도 한 명의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해
여시들이 이 분의 역사를 알고 기억해주길 바래
~ 전문 읽기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