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iz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888
드라마에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오롯이 배우의 몫이다. 그 광경이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순간 배우도, 드라마도 주목받게 된다.
요즘 MBC 금토극 ‘연인’(극본 황진영, 연출 김성용)이 그 진귀한 광경을 선사하며 안방극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남녀 주인공으로 나선 남궁민과 안은진이 펼치는 연기가 놀라운 흡입력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안은진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 달라졌다. 몇 해 전부터 지상파 연말 연기대상을 차례로 거머쥔 남궁민이야 이번에도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면, 이제 막 주연배우로 부상한 안은진의 열연은 기대 이상이어서 경이로운 마음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앞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추민하 선생’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안은진은 이내 주연급으로 발돋움하더니 올 상반기에는 ‘나쁜 엄마’의 흥행으로 주목받았다. 이들 드라마를 통해 안은진은 천진한 미소와 다부진 말투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었다.
그런 안은진이 ‘연인’에서는 남다른 존재감으로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깊이를 더하는 빼어난 연기력으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으니 시청자들이 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안은진은 극 초반 뽀얀 피부와 부드러운 눈매에 잘 어울리는 화사한 한복 차림으로 나서며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높이더니 극중 사건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자 옷이며 얼굴이며 볼품없이 흙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더욱 매력적으로 빛나는 놀라운 반전을 펼쳤다. 위기를 헤쳐나가는 여주인공의 강인한 생존력을 생동감 있게 연기하는 안은진의 에너지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생생히 와닿았다.
안은진이 그리는 유길채 역은 평화로운 능군리에서 사내들의 마음을 빼앗는 데에나 관심이 있던 철없는 양반댁 애기씨였지만,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누구보다 굳세고 당찬 여인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희희낙락하며 그네나 타던 한가로운 시절에는 말만 불여시처럼 할 뿐 실상은 얼렁뚱땅 세상 물정 모르던 소녀였다. 그런 길채의 맹랑함이 전쟁통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하는 순발력과 결단력으로 발현됐다. 피난길에서 기지를 발휘해 오랑캐를 따돌리고, 벗을 구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안은진은 고우면서 동시에 강단이 느껴지는 이목구비로 섬세한 연기를 펼치며 길채의 미묘한 내적 성장을 흡입력 있게 그려냈다.
최근에는 스물스물 이장현(남궁민)을 향한 마음이 커지는 모습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자주 꾸는 꿈속 사내가 자신의 낭군이 될 거라 믿던 순진한 소녀가 서서히 성숙한 여인이 되어 실제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팬들에게 안은진은 성장하는 길채 그 자체였다.
길채는 전쟁 전만 해도 올곧은 선비의 표상 같은 남연준(이학주) 도령을 흠모하면서 연준과는 정반대 같은 능글맞은 장현을 경멸해 마지않았는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비를 몇 차례 거치면서 어느덧 자신의 마음에 장현이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장현을 밀어내고 내치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누구보다 살뜰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그를 신경 쓰며 애틋한 마음을 키우던 중이었다.
길채의 마음이 이러한데, 청나라 심양으로 떠난 장현의 유품이 돌아왔으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간 확인하지 못했던 꿈속 낭군의 얼굴이 장현으로 드러났다. 길채는 “장현 도령, 돌아오시오”하고 오열하며 팬들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길채의 비통한 마음을 담아 울부짖는 안은진의 목소리가 팬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안은진의 절절한 연기가 ‘연인’을 클라이맥스에 닿게 했다.
이렇듯 안은진은 명랑만화 주인공 같은 천방지축 소녀부터 대하소설 속 비운의 여주인공 같은 애달픈 여인까지 열연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시청률이 두 자릿수에 안착하며 안방극장 대세가 된 ‘연인’을 통해 ‘대세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과연 요즘 연예계를 휘젓고 있다는 ‘전설의 한예종 10학번’이구나 싶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