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8679 김좌진은 1889년 충남 홍성에서 김형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다. 명문대가 집안 출신으로,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할 정도로 진취적인 개화사상이 강하였다. 어릴 적에 한학을 수학한 후 16세에 상경하여 17세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 19세에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 장교로 임관했다. 대한제국 군대가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된 후 귀향해서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우고, 대한협회 홍성지부를 조직하는 등 계몽운동에 적극 나섰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북간도에 독립군 양성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군자금 모금활동에 나섰다가 체포되어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1913년에 출옥하였다. 1915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했고, 1918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38명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3·1운동 직후에는 대한정의단을 대한민국임시정부 휘하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편한 뒤, 총사령관이 되어 1,600명 규모의 독립군을 훈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