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보다 중요한 것: 중간을 견디는 힘
나는 개인적으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무척 신뢰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간이 가장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무엇이든 언젠가 하고 싶었던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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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https://m.facebook.com/writerjiwoo/posts/2794256927490129
나는 개인적으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무척 신뢰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간이 가장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무엇이든 언젠가 하고 싶었던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일단 시작하는 게 어려울 뿐, 시작하고 나서는 시작이 주는 힘에 이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달리 말해 나머지 반은 ‘시작의 힘’ 없이 스스로 이끌고 가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는 듯하다.
시작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중간을 넘기는 게 또 만만치 않다. 중간쯤 이르러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쩔 수 없다. 어떤 일이든지 나름의 성과나 결과랄 것이 제대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까. 중간까지는 아무런 성과가 없을 수도 있고, 성취감이나 노력의 결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슬슬 포기할 타이밍을 재게 되는데, 사실 그때쯤이 비로소 결과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겨우 마련될 시점일 가능성이 높다.
인내심이나 끈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능력에 가깝다.
이것 봐, 나는 안 되잖아. 역시 아무 의미 없잖아. 내가 그렇게 힘들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나는 맞지 않는 거야.
이런 의문들이 쏟아질 때, 그냥 믿고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간’을 넘기고 나면, 서서히 노력의 의미랄 것을 조금씩 만나게 된다.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고, 통합되고, 응용된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 보인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반응이랄 것을 조금씩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또 9부 능선까지는 달릴 수 있게 된다. 9부 능선까지 달리면, 대개 마지막까지 가게 된다.
결국 많은 일에서 핵심은 ‘중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것이다. 이 중간의 지옥을 이겨내는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어떤 일이든 슬슬 ‘중간의 지옥이로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중간의 지옥을 지나고 나면, 달릴 수 있는 평야가 있다는 것도 믿게 된다.
사실, 중간의 지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냥 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어떤 의심이 들고, 의욕 상실의 늪을 헤매고, 절망감이나 좌절감이 앞설 때도 그냥 하는 것이다. 다른 걸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다. 중간의 지옥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하는 것이다.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일이 내게 어울리는 것일까, 이게 나의 길인가,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는가 고민하게 된다. 어떤 일이든 중간의 지옥을 지나 보지 않으면, 그 일이 나에게 어울리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 후 나오는 결과와 반응을 보고서야, 이 일이 내게 어울리는 것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중간의 지옥을 지나지 않으면 내 삶에 어울리는 방식을 찾아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서, 슬슬 중간 지점에 다다랐다고 느끼면 곧 이 일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이 일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