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CRUSH 1부 요약 링크
https://www.instiz.net/pt/7458499
요약본이라 많은 분량을 생략했습니다
원본 다큐에서는 참사 피해자분들의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태원 다큐 CRUSH는 총 2부입니다
1부 - 골목
2부 - 군중 (해당 요약)
다큐에서 피해자분들의 참사 전~참사 직후까지의 상황이 나오는데
이 요약본에서는 참사 현장이나 CPR장면 등 충격적인 장면은 모두 뺐습니다
제 동생은 저를 ‘누나-엄마’라고 불렀어요
부모님이 항상 바쁘셔서 거의 제가 동생을 돌봤었거든요
이태원은 동생이 자주 가던 곳이었어요
동생과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10월 29일 이른 오후였죠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누나, 신발 어떤 거 살까’
젊은 애들이 친구들끼리 와요,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그날은 할로윈 데이 축제였는데
'나 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팔을 당겨 보니까 빠지질 않아. 절대 안 움직여.
9시 50분쯤 애들을 바닥에 눕혀놓고 심호흡하고...
그래도 길바닥에 다 쓰러져있으니 미쳐버리지. 벼락 맞은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야.
참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면
한국 정부가 제대로 일을 했어야 했어요
누구의 책임인지 알아냈어야죠
-CRUSH 2부, 군중-
티아 바레
한국 유학생
제 등에도 사람들이 있어서 제 목이 앞으로 굽혀졌어요
모두 소리지르고 있었어요
‘도와주세요, 도움이 필요해요’
비앙카 자피엔
한국 유학생
저는 사람들 아래 깔려 있었는데 너무 고통이 컸어요
그래서 그냥 모든 게 끝나길 바랬어요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라가 제게 소리쳤어요
‘구조대가 오고 있어’
6시 34분 : 최초 신고
8시
9시 7분
9시 51분
10시 44분 : 소방서 대응 발령
-> 11시 50분
상황실이 생긴 이후로 3개 팀 이상이 동시에 활동을 해 본 적이 없고
저희의 훈련 시나리오, 교육 시나리오에서도 최대 3개 팀이 모여서 활동하는 그런 훈련만 받으셨던 분들인데
14개 팀을 보내면서 사실 현장의 규모는 전혀 예측도 못 했고...
압사는 우리가 심폐소생술을 진행하지 않았을 경우
4~5분 안에 진행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생존할 확률이 절반도 안 된다...
사상자들이 있는 상황인데, 오로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되겠다.
사람들을 빼내기 시작하면서 제가 놀랐던 건 그 사람들이 구급대원이나 전문인력들이 아니란 거였어요
외국인 두 명이 저를 주점 계단으로 들고 갔어요
제 다리가 전혀 움직이질 않았거든요
사람들 무게가 덜어지는 게 느껴져서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저 아래에 있어요, 살아있어요, 살아있어요’
한 남자가 소리쳤어요
‘어디, 어디요?’
‘아래요, 아래 있어요’ 라고 답했어요
그래서 위의 사람들을 계속 들어내고 나서 저를 찾아냈어요
빠져나오고 나서 보니까 사라가 거기 있었어요
서로 ‘티아’, ‘사라’ 하고 불렀죠
그 애는 제 수호천사였어요
기쁨은 잠시였어요
땅에 누워있는 앤을 발겼했죠
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눈도 감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바로 CPR을 수행했어요
의식이 없었거든요
의료진의 도움을 받고 싶었어요
제세동기를 쓸 수 있게요
근데 ‘여기서 나가세요’ 라고 했어요
빨리 나가라고, 빠져 나가라고 안내를 받았어요
그러다가 시야에서 앤을 놓쳤어요
친구들을 살리고 돕는 데 온통 신경을 쓰다가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지자 그제서야 충격이 느껴졌어요
아리아나 이바라
한국 유학생
‘싸우는 것처럼 손을 이렇게 올리면 보호벽이 만들어지니까 숨을 쉴 수 있어요’
제가 그렇게 하고 그 분 팔로 제 주위를 둘러싸며 보호했어요
그러고는 말했어요
‘제가 앞으로 한 발씩 가면 당신도 한 발씩 가는 거예요’
그렇게 함께 가면서 그가 말했어요
‘숨 쉬고, 왼발, 오른발’
‘숨 쉬고, 왼발, 오른발’
큰 길로 나오자마자 전 울음을 터뜨렸어요
제 머릿속에는 티아, 앤, 스티븐, 사라, 비앙카 생각뿐이었어요
데인 비트하드
주한 미군, 준위
주점으로 들어갔을 때 거기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죠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주점쪽으로 빼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었어요
첫 대응 인력이 왔는데도 계속 붐비는 걸 보고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문가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비켜주는 거라고 판단했어요
자밀 테일러
주한 미군, 병장
우리가 빠져나왔을 때 온통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어요
골목 위쪽도
골목 아래쪽도
전부 쓰러진 사람들이었어요
차마 볼 수가 없었어요
다들 젊은이들이었어요
아직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한..
18살, 19살, 20살..
애들이잖아요.
전 그레이스를 찾고 있었어요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레이스가 아닌지 확인을 했어요
대로변에 시신들이 줄지어 있었어요
일일이 확인하면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인지
비슷한 신발이나 머리 모양이 있는지 봤어요
사람들을 덮은 천을 들춰 볼 때마다 그레이스가 아니길 바랬어요
그 때 또다른 시신이 실려나오는데 그레이스처럼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어요
그녀란 걸 알았죠
천을 들추고 얼굴을 봤는데..
여전히 예쁜 얼굴이었어요
살아있었을 때처럼요
아틀랜타, 조지아주
스티브와 마리아 블레시
스티븐의 부모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 사람이 물어보더군요
‘스티브와 마리아 블레시 댁인가요?’
‘그런데요’
‘앉아서 전화받고 계신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순간.. 알았죠
그 다음 말이 뭔지는 누구나 알 겁니다
아이가 사망했다고 알려줬어요
지문으로 확인했다고 했어요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요
저는.. 아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듣고는..
‘하느님, 백 번이라도 제게 시련을 주시지’
‘아이가 그렇게 되지 않게 대신 저를 데려가시지’
엄마 입장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이건.. 말이 안돼요..
2022년 10월 30일
사건 다음 날
(해외 아나운서들의 목소리)
-속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할로윈 축제에 참가했던 인파가..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 엉키면서..
-좁은 골목실에서 질식하는..
-파티 참석자들이 붐비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입니다
-수십 명이 아직 입원 상태고 사망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 최소 59명이 사망했습니다
- 100명 사망, 105명 사망..
- 146명..
- 149명..
- 150명이 사망했습니다
- 158명이 사망했습니다
저도 죽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계속 졸랐었어요
‘거기 꼭 가봐야 해’
‘일단 도착하면 괜찮을 거야’
앤은 평생 주점에 간 적이 없었어요
처음으로 제가 권했는데 그 친구가 죽었어요
참사가 벌어진 골목은 여전히 봉쇄 중입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찾아와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태원 기사는 가장 다루기 어려웠던 이야기였어요
바로 제가 사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어요
많은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숨을 거뒀어요
대부분 20대였고 대부분 여성이었어요
거기에 있었던 한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사망자는 158명에서 159명이 되었어요
홍주환
탐사보도 기자
저는 인권, 노동 분야를 취재하던 기자고요
이번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취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테러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미국처럼 총기 난사도 아닌데
어느 나라의 수도에서 시민 159명이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죽을 수가 있나?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비극적인 사고라고 생각했어요
총리, ‘이태원 사고’ 기자회견
이태원 압사, 예견된 ‘사고’
여전히 ‘사고’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사고가 아닙니다
사고라는 건 피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날 밤 당국의 대처는 정말 실망스러웠어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어요
이태원은 할로윈 축제로 유명한 곳이에요
당국은 군중 통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요
한 주 전 행사에서는 도로를 통제했었어요
훨씬 더 작고 덜 유명한 음식 문화 행사였는데도요
대한민국은 군중 통제를 잘 알고 있고 잘 해 왔던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곧바로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고 기록이 공개되면서 경찰과 응급대응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어났어요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온 게 6시 34분이었어요
사건 발생 거의 4시간 전이었죠
최초 신고 때 너무도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람들로 꽉 차 있다고요
이것이 크나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유가족들이 모이고 함께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피해자의 엄마
"초동대처가 6시 34분부터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158명의 희생자들은 결코 생기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죽어가는 청년들은 보고만 있던, 아니 못 본체 한 이들, 그들의 자녀들이 압사를 당해 봐야 알 수 있는 일들일까요?
이 망나니같은 저열한 인간들을 응징해 주세요."
제가 돌아서서 말했어요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왜 군중 통제를 안 했는지
왜 적절한 대비를 안 했는지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도로도 막지 않았고 지하철 역의 무정차 통과도 안 했어요
누군가는 반드시 실제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용혜인
국회의원
저는 용산구청과 행정안전부, 서울시 이런 기관들의 책임을 규명하는 데 집중을 했었습니다.
"소방에서는요, 22시 56분, 59분, 23시 16분, 25분, 28분, 30분에 수차례 직접 전화를 걸어서 제발 경찰 좀 더 많이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경찰이 이 참사 원인의 핵심적인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당일 6시 34분부터 압사 우려가 있던 신고가 계속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기동대 배치도 전혀 하지 않았고...
이상민 장관은 여전히 '누가 이태원 참사를 예견할 수 있었겠냐, 나도 몰랐다' 고 하시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거거든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이나 행정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을 하고 있고요..."
용산경찰서 차원에서 10만명의 인파가 모일 것이라고 예측했던 보고서를 수일 전에 작성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당국에선 취하지 않고 있었던 거죠.
정보계장, 그러니까 정보과장 바로 아래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요,
10만명이 운집할 것이라는 경찰 보고서 은폐를 가담했다는 수사를 받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목숨을 끊은 날, 서울시 안전과에 소속된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경찰을 향한 비판은 진짜... 상상을 초월하고 있죠.
경찰은 인파를 예상했어요
이전보다 더 많이요
왜냐하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처음 제대로 열리는 할로윈 축제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보고도 있었어요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이 보고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군중 통제 계획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사고 3일 후에 해당 보고서가 삭제됐어요
- 박희영 용산구청장
(기자)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장관님!"
"입이 막히셨습니까? 왜 말을 안 하세요!"
(기자) "계속 피하실 겁니까?"
(유가족) "당신도 사람이잖아! 우리 애가 죽었는데 한마디 해야 되잖아!!"
- 조사가 재개되었고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경찰과 구청의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유가족들은 수사 결과에 매우 실망했습니다
왜냐하면 더 높은 직위의 사람이 책임지길 원했어요
이 나라의 공직자들이 책임을 안 지는 것이 아닌가.
특히나 몇몇 고위공직자는, 대통령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어떻게 묻냐' 라고 하고 있는데...
"국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기자분들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증거인멸과 자료 삭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걸 낱낱이 밝혀 이 나라 청년들의 찬란한 미래가 억울하게 짓밟히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죠
그 날 밤을 둘러싼 비밀과 침묵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 친구들도 궁금해 하고 있어요
‘언제쯤 답을 듣게 될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우리는 답을 듣지 못했어요
우리 가족이 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부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죠?
윤석열 대통령은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한국 국민들은 전에도 그런 약속을 들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세월호 때도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수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었어요
이번 이태원의 희생자들과 동일한 세대죠
한국의 선박 침몰로 인한 사망자가 오전까지 10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배에는 500명 가까운 승객이 타고 있었습니다
수십 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대부분 고등학생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었습니다
대피가 지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할 수는 없었을까요?
시위자들은 국가적인 해상 재난에 대해
정부의 답변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과거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그게 반복됐던 게 이태원 참사인 거에요.
우리 젊은 세대가 진짜 필요로 할 때 국가는 어디 있었지?"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이 자초한 걸 수도 있다'
'애시당초 왜 이태원처럼 사람이 많은 데를 가서 술을 마시느냐..'
청문회에 생존자로서 나와 발언을 해 줄 수 있겠냐는 요청을 받고 갔는데
'놀러가서 죽은 걸 뭐 어쩌라고, 놀러간 사람이 문제다' 이게 가장 쎈 비난 문장이거든요?
"참사의 원인은 유흥과 밤문화, 외국 귀신 파티 문화가 아닙니다.
참사의 유일한 원인은 군중 밀집 관리의 실패입니다."
저도 이제 제 가게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저도 그걸 살리지 못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제가 먼저 유족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청문회 자리가 열리기 전까지도 피해자나 유족 분들이 한번도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한 상태였거든요
그분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며 절을 하셨어요
사장님이 잘못하신 것도 아닌데 되게 큰 위로가 됐어요
누구도 그런 식으로 죽어선 안돼요
그런데 얼마 지나자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았어요
이태원의 길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편지들이 쌓였지만
나머지 서울은 원래대로 흘러갔어요
포트 실, 오클라호마주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사람들이 넘어져 있었는지
밤새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직접 본 게 아니면 절대 이해 못해요
살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겪었지만
어떤 일들은 절대 잊혀지지가 않아요
계속 뇌리에 남아있죠
사람이니까요
입원 한 달 반 정도까지는 잘 못 걸었어요.
의사 선생님들은 '춤추는 것도 2024년에 나아질 수 있을 거다'
사건 6개월 후
제가 이 춤을 출 수 있다는 거는
너무나도 당연한 내 일상을 다시 되찾는다'
일종의 상징이에요
원래의 삶, 내 삶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죠
"어, 어떡해... 왜 눈물이 나지?"
춤은 고사하고 걷는 것도 힘들어지면 어떻게 하지? (생각했는데)
앞으로 더 활발하게 더 뭔가... 추시고, 재밌는 거 다 하시고,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유일한 치료 방법이고, 그게 이 사건을 이겨내는 용기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랑하는 이가 돌아올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뭔가를 해야죠.
우리는 관계자들이
이태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듣고
잘못한 사람이 책임을 지길 바랍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태원, 크러시
2부 요약 마침
캡처하고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