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데뷔 후 역대급 신인 등장으로 이름을 알린 페이커
무려 데뷔 시즌에 리그 오브 레전드 최고 권위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단숨에 임요환을 잇는 E 스포츠 스타로 떠오른다.
이어 2015 2016 시즌 연달아 월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그는 그야말로 아무도 막을 자가 없는 황제로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2017년 월즈 결승에서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만 황제.
세 번의 월즈 우승에도 좀처럼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페이커가 처음으로 감정적으로 무너진 모습에 전세계 롤 팬들은 충격에 빠진다.
그 후로 2018, 2019, 2020, 2021 페이커와 T1은 월즈 우승의 자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자국 리그에서조차 페이커를 이을 새로운 스타의 등장을 염원하는 듯 보였다.
바로 위 영상은 아직도 T1 팬들이 보면 분노를 참지 못하는 전설의 "아니고" 짤.
2022년 최고의 신인 탑 라이너이자 T1의 유스로 활약하던 제우스의 콜업을 시작으로 10번째 국내 리그 우승에 성공한 T1은
드디어 2022년 월즈에서 무려 6년만에 결승전에 진출하며 압도적인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주인공 DRX와 데프트의 서사를 끝내 막아내지 못한 T1은 결국 혈전 끝에 3:2로 우승의 기회를 코앞에서 놓치고 만다.
T1 선수들 스스로도 좌절과 슬픔을 견디지 못해 오열했고
페이커는 2017년의 자신의 아픔을 2022년의 동료의 모습에서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3년 T1은 아픔을 딛고 각고의 노력 끝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얻었지만 2023 LCK 스프링 시즌 준우승, MSI 3위의 성적으로 기대 대비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롤드컵 진출이 달려있는 2023 LCK 써머 시즌에서는 페이커의 손목 부상 이슈로 인한 출전 불가, 배성웅(Bengi) 감독의 갑작스러운 시즌 도중 사임으로 T1은 1승 6패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T1 팬덤은 분노와 좌절에 휩싸였고, 각종 롤 커뮤니티는 페이커와 T1이 과연 월즈 우승은커녕 리그 우승, 아니, 롤드컵 진출은 가능할 것인지 의심하고 조롱을 퍼부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T1은 페이커의 복귀로 구사일생하며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고 롤드컵 진출까지 확정짓지만 끝내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Gen.G 에게 단 한 세트도 득점하지 못하며 대회 4연속 준우승이라는 쓴맛을 다시금 맛보게 된다.
여러 악재와 4연 준우승이란 불명예 타이틀로 T1은 롤드컵 개막전까지 우승 후보 세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했고 심지어 이번 시즌이 끝난다면 현 제우스-오너-페이커-구마유시-케리아 라인업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대회 초반 상대적 약팀이라 평가받던 북미의 Team Liquid에 진땀승, 한국의 Gen.G에게 다시금 패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점쯤 T1의 경기력이 심상치 않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국내 리그와 팽팽한 라이벌리를 다투는 중국 리그의 2시드이자, 지난 봄 MSI에서 T1에게 결승 진출 좌절을 맛보게 했던 BLG를 2:0으로 잡아내며 8강에 진출한 T1.
그러나 결승 진출을 위해서는 우승 배당 1, 2위를 다투는 중국의 JDG와 LNG를 꺾어내야만 하는 상황.
심지어 국내 리그 3연속 우승을 거두며 강력한 월즈 우승 후보로 꼽히던 LCK 1시드 Gen.G가 최악의 폼을 보이며 중국 리그의 BLG에 8강 탈락, T1과 같은 대진의 KT Rolster가 당해 모든 국내외 대회 석권을 노리는 중국 리그의 JDG에 역시 탈락하고 만다.
뒤이어 T1마저 LNG에 패배한다면 무려 '5년만에' '한국에서' 개최된 월드 챔피언십에서 4중국 4강이라는 끔찍한 대진이 펼쳐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T1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3:0, LNG를 셧아웃하며 4강에 진출한다. 4강의 상대는 개최 전 우승후보 0순위로 꼽히며 중국 리그 연속 우승, MSI 우승을 달성한 JDG.
공교롭게도 이 팀에는 지난 2017년 페이커에게 첫 월즈 결승 패배를 안겼던 룰러 선수가 있었다. 또 한 명의 한국인 선수 카나비는 룰러와 함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로 활약하기도 했다(중국 리그는 한국인 용병을 자주 기용한다).
결과는 3:1이었지만 어마어마한 혈전이었고 T1을 벼랑 끝까지도 몰고 갔던 JDG의 무서운 경기력.
그러나 그들의 우승의 꿈은 아마 두고두고 회자될 페이커의 역대급 슈퍼 플레이 한 번으로 산산조각나고 만다.
이 때 T1은 자칫 경기에 패배할 수도 있었을만큼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으며, 다수의 롤팬들이 페이커의 이 토스 한 방이 징동의 월즈 우승이라는 세계선이 완전히 뒤틀어버렸다고 평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장면에서 롤 중계 방송 서버가 터져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트래픽이 발생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진출한 월즈 결승. 페이커와 T1의 선수들은 작년의 아픔을 딛고 절치부심하여 상대인 WBG에게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2023 월즈를 우승하게 된다.
이 우승 한 번으로 페이커와 T1은 그간 준우승으로 쌓아올린 진한 아쉬움을 단 한 번에 불식해냈다.
또한 롤드컵에 진출한 네 개의 중국팀을 모두 차례차례 짓밟으며 국내외 역대급 화제성, 주요 언론의 찬사까지 이끌어 내었고 다시금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10년의 선수 생활 동안 끊임없는 증명을 요구받았던 황제는 그렇게 다시 날아올랐고
자신의 자리는 그 어떤 누구도 넘볼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