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세요!"
언젠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들었던 반응이다. 초면인 사람이 갑자기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했으니 적잖이 당황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힘내세요'라니 이건 무슨 뜻일까. 물론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도 그걸 몰랐을 리는 없다.
당신이 어렵게 살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 내가 응원하겠다는 의미였을까. 어쩌면 낯선 이를 향해 선의를 보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성소수자라 살면서 힘든 순간이 많은 건 맞는데 나는 그게 전부일까. 아니면 동성애자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우리가 겪는 고통일까. 그래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되는.
한편으로 차별과 혐오라는 고난과 역경을 마주한 이들은 쉽게 낭만화 되기도 한다. 소수자들은 계속해서 무언가에 부딪히고 상처받고 이를 넘기 위해서는 무언가 행동하거나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동기가 사익 추구가 아니라 주로 존재를 인정받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란 점에서 소수자들의 투쟁은 종종 숭고한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국적·인종·장애 유무·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막론하고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자주 만들어져 왔기에 특별할 것은 없다. 전형적이긴 하지만 소수자를 가로막는 차별과 배제를 드러내야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다는 나름의 장점도 있다.
하지만 상처받기 쉬운 취약성이 소수자들의 주된 특징으로 묘사될 때는 미묘한 감정이 든다. 장르와 매체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집요하게 그리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고통받는 소수자'의 이미지가 있다. 그런 재현과 묘사를 볼 때면 의문이 든다. 나는 그게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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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곧 내가 동성애자인 게 싫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고통과 아픔의 원인이 내 성적 지향이라는 뜻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 세상이 동성애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기에 살아가는 게 막막했을 뿐이다. 일견 비슷해 보이는 두 표현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장애인이건 비(非)백인이건 성소수자이건 간에 이들이 겪는 고통이 고난과 역경 때문이며 그것이 실은 매우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것이라는 맥락이 빠질 경우 이야기는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사실 캠코더 너머의 세상에서 아이유와 뷔가 말을 하고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감독의 해설대로 그것이 '상상만 해오던 행복'의 모습이라고 해도 말이다.
왜 그 모습이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상하게 되었는지 이유와 맥락을 설정하면 된다. 하다못해 그들이 말을 하지 못하고 한쪽 눈으로 보는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라도 가능해진다(물론 이마저도 충분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와 맥락이 아예 없다면 결론은 매우 단순하게 '말할 수 있고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그러지 못한 것보다 낫기 때문'이 되어버린다. 그 상태가 '낙원'에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결론. 하지만 말이 그렇게 되면 현실에 존재하는 장애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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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윈스 올' 뮤직비디오를 보며 심란한 마음이 들었던 것과는 별개로 나는 아이유와 제작진들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이 뮤직비디오의 여러 장면에서 방황하고 박해받는 두 주인공을 보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행복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도.
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이와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이'들을 극도로 추상적인 디스토피아에 떨어트리고 구체적인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추상적인 정육면체로 표현된 혐오에 마주 시키는 순간 결과물은 애초의 의도와 아예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된다. 이 글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인종 차별,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구조,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존재만 전재하고 만들어진 법과 제도. 그리고 이런 것들이 아주 치밀하게 스며든 일상의 문화. 나는 소수자를 재현하기 위해선 이런 것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전면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자로서 나에겐 정체성과 고통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고통에는 이유가 있고 세상과 연결된 지점이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매우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만 캠코더 너머의 세상은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혹은 애초에 그 세상의 모습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혐오에 맞서 이겨보려는 그 선의를 예술로 구현할 거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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