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문명대 교수는 29살이었지만 젊은 시절 사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착한 사람한테는 29살으로 보인다 얍
197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던 문명대 석사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내려갔다.
(대충 벌컥벌컥 쨔잔 뚝배기 으악퉤퉤했다는 썰)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반고사라는 절의 터가 어디에 있을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에게 주변 절터의 무너진 탑에 대해
설명해주기로 한 현지인은
'저 절벽 아래에 그림이 있다...'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솔깃) 혹시 누가 암벽에 불상을 새겨놓았나?
그는 불교미술을 전공한 학자로서 유적을 무시할 수 없어
동료들을 절터로 보내고, 자신은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림은 흙탕물과 이끼로 가려져 있었지만,
랑(郞) 자가 많은 것을 확인한 그는
처음엔 이 유적이 신라시대 화랑의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탁본을 떠 동료들과 조사한 결과,
1971년 1월 1일, 그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 흐릿한 그림의 정체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암각화와
신라 시대 사람들이 새긴 기록이 함께 남아 있는,
대한민국 국보 제147호인 울주 천전리 암각화였다.
으아아 너무 좋아!!! 근데 너무 바빠!!!
그러나 당시 한국에는 암각화 전문가는 커녕
한국어로 번역된 관련 서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문명대 석사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쓰인 책으로
암각화를 독학해 최초의 전문가가 되어야 했으며,
여름에 물이 불어나 그림이 잠기기 전에
5월까지 모든 연구를 끝마쳐야 했다.
우왕 신기 (기웃기웃)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낮잠 자는 곳에도 호랑이 그림 있는데
걔도 한 번 봐 주면 안 돼요?
시골이나 다름없던 천전리에 젊은이들이 몰려와
그림 앞에서 몇 달이고 살다시피 하는 것을 보자,
마을 주민들은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호랑이 그림이 있다는 말을
여러 사람이 하기 시작한다.
잠시만요!!! 이것만 끝내고요!!!
그러나 당장은 나눌 인력이 없었기에,
우선 울주 천전리 암각화 연구에 집중하였다.
결과적으로 연구진은 우리나라가 신석기 시대에
북방문화권에 속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으며,
신라 시대의 부족한 기록을 채우는 사료가 되기도 했다.
문명대(현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
동국대학교 불교미술문화연구소 소장)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말을 잊지 않은 그는
겨울방학에 친구 둘과 함께 조사하러 떠나는데,
이 친구 두 명이 미래에...
김정배 (제14대 고려대 총장, 제13대 국사편찬위원장)
오 같이 가 나도 천전리 암각화 구경할래
이융조(충북대 명예교수,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방학에 연구? 못참지 ㄹㅇㅋㅋ
다들 한국사학계의 거목이 되었다는 소소한 일화가 있다.
어쨌든 세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안내를 따라
강을 한참 거슬러 올라...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한지 1년 하고도 하루가 지나,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대한민국 국보 제285호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하게 된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석사에겐~ 국보를 안 주신대~
이렇게 한반도 선사시대 유물을 최초로,
그것도 1년 안에 두 번이나 발견한 문 교수는
선사미술을 10년 동안 배우긴 했지만,
불교미술을 계속 연구하면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역시 연구자는 사람 말을 잘 들어야 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