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는 대한민국 국보 제86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응? 근데 탑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닐 텐데
개성에 있었던 탑이 어떻게 서울에 있는 걸까?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1345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원나라의 양식을 도입해 화려한 게 특징이다.
문제는 1900년대에 들어 한민족의 나라가 대충 망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07년 1월 순종의 가례식에 참석하러 온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 미츠아키가 석탑을 탐내게 된다.
이 롬 면상부터 표독스러운 거 봐
뭔 소리요
그는 고종황제를 접견한 후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선물로 달라 요구하지만
당연히 빠꾸를 먹었다.
그러자 다나카는 무장한 일본인들을 보내
석탑을 지키려 모인 개성 주민들을 위협,
석탑을 140부위로 분해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명백한 문화재 도둑질을 저지른다.
이런 작자가 궁내대신을 하는 일제나
그걸 못 막는 대한제국이나 아주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다.
나약한 조센wwwww 따위가 뭘 할 수 있는www
다나카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과의 친선을 위해 황제가 선물로 줬다'라는
뻔뻔한 거짓말을 한다.
이렇게 망국의 서러움을 느끼며
또 하나의 문화재를 잃나 했지만...
여러분!!! 일본 특사가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민간인을 위협해서 탑을 뜯어갔습니다!!!
다나카 너는 네 나라의 수치다 수치!!!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은
이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한 뒤 후속 보도를 이어나가고...
[Web Bal-Sin]
You MUST return Gyeongcheonsa Pagoda.
I run 'Korea Review' and
have the influence to inform the US and Japanese newspapers of your thief...
우리에겐 띄어쓰기의 도입자로 유명한 호머 헐버트도
미국 뉴욕포스트와 일본의 영자신문에 이를 알리며
전 세계에 다나카의 도둑질을 알렸다.
두 분 덕분에 다나카의 도둑질은 세계뿐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았고,
결국 그는 분해한 석탑의 포장조차 뜯지 못한 채
1918년 다시 한반도로 석탑을 반환했다.
그러나 석탑은 원래 있던 개성이 아닌
경복궁으로 가게 되었고,
반출 당시 손상이 너무 심해
당시의 기술로는 복원할 수 없어
1960년까지 방치되다가 1962년에서야 다시 세워졌다.
이 뇌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새끼 그냥
나한테 왜 그러니... 살려다오...
그러나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되며 석탑은 또 손상되었다.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인데,
산성비가 내리며 석탑을 점차 부식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휴
그리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5년 석탑을 해체,
10년 동안 보존처리를 거쳤다.
그리고 2005년 용산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옮겨갔을 때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도 함께 로비에 서게 되었다.
이렇게 수난을 겪던 석탑이지만,
그래도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이 두 분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서면 십층석탑의 위용을 보며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