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v.daum.net/v/20231126225216444
대한민국 대신 '남조선 괴뢰' 호칭을 사용하라는 등 5가지 철칙을 강요했고 이를 어기면 엄벌에 처했습니다.
[이상봉 / 북송 재일교포 : 이산가족 절대 만나겠다고 이산가족 신청도 하지 말라. 그다음에 국군포로 세 명 이상 모이지 말라.]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다는 국군포로들의 기대가 곧 실망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이 씨는 울음을 삼켰습니다.
[이상봉 / 북송 재일교포 : 그때 실망한 국군포로들 얼굴이 눈앞에 선합니다. 두 달 후에 김대중 (대통령) 돌아간 뒤에 다시 만났는데 대한민국에서 우리(국군포로)가 포로가 됐다고 버리는가 봐 하고 실망하더라고….]
탈북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한 국군포로 가족이 무자비하게 공개 처형되는 장면도 직접 목격했습니다.
북한은 최대 8만 명으로 추정되는 국군포로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상황.
그렇다 보니 대부분 90세 이상 고령으로 추정되는 국군포로들 가운데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신지도 알 수 없습니다.
https://v.daum.net/v/20240211130018311
어르신은 북한에 있을 때 가족들이 들을까봐 소리를 죽여가며 불렀던 노래가 있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 어르신을 다시 찾아가 노래를 부탁드려 봤습니다.
1952년에 나온 노래 ‘전선야곡’이었습니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인터뷰> 이대봉/ 53년 동안 국군포로 생활
전선에서도 그렇고, 북한에서도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그 노래를 부르고 그랬어. 그래서 항상 어머니를 생각했고... 어머니가 뭐겠어. 곧 조국이지.
〈인터뷰> 이혜민/ 작가
나를 키워주고 길러준 그런 조국. 이런 조국에서 날 돌보지 않았다 그런 점을 저한테 설명하실 때는 정말 분노하셨어요. 좋다,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아도 좋다. 그렇다면 국군포로 단 한 명이라도 데리러 왔어야 하지 않느냐. 안 데리러 온 것도 좋다.
그러면 데리고 가겠다는 시도라도 했어야 하지 않냐. 정상회담 할 때 말이라도 꺼내야 되는 것 아니냐.
탈북에 성공한 국군포로 중 생존해계신분은 현재 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