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조선초기

왕과 모든 신하들이 모여서
궁을 어디다가 지을까 고민했음

정도전: 야 우리 중국 따라서 남향으로 지어야할 거 같어

태조: 아 그래? 뭐 도전이가 그렇다면 그래야지

무학대사: ㅋㅋㅋㅋㅋㅋㅋ웃기고들있네
니네 공부는 제대로 했간????

태조: 응??????? 남쪽 바라보게 지으면 안돼???

무학대사: ㅋㅋㅋㅋ정도전만 개국공신이냐?
나도 개국공신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님 왕 되는것도 예견하지 않았음????

태조: 아 그건 그렇지 근데....

무학대사: 내가 님 아버지 묫자리도 봐주고 말이야
백성들 민심도 봐주고 말이야
내 말 안 들으면 큰일 난다니까????

정도전: 아 뭐래 진짜!!!
나 천재 정도전이야!!!!
제왕은 예부터 북쪽에 좌정하고
남쪽을 향해 앉아서 사방을 다스렸다고!!!
북악산을 주 산으로 인왕산과
낙산을 좌우 청룡과 백호로 삼고,
목멱산을 향해 남향 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니깐!!!!!

태조: 정도전이가 저러는디...????

무학대사: 하....인왕산을 중심으로 동향쪽에
궁 지어야함....내 말 들어...!!!


정도전: 남향!!!!!!!!!남향!!!!!!!!!


무학대사: 동향!!!!!동향!!!!!!!!

태조: 그냥 목소리 큰 놈 말대로 하자...;

결국 정도전이 말대로 남향으로
짓게 됨

무학대사 : 휴...내가 거기다 지으란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니깐...
님 거기다가 궁 그렇게 지으면
왕조 기틀이 흔들려요
님 이번 결정 200년뒤에 내 말 생각날 때가 있을걸

태조: 어????
근데 200년뒤면 나 죽은 후이긴 하지만...
아나 찝찝한데......

무학대사: 관악산 알지?
거기가 아주 그냥 불덩어리야
불 기운이 넘치다 못해 흘러흘러
그 불의 기운이 궁의 자리를 덮칠거야

실제 관악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임
그래서 화 기운이 없는 사람들은
관악구에 살면 좋다는 말이 있음
근데 화기운 넘치는 사람들이 관악구 살거면...
그 자리에서 열버해 같은 불대불로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 선택해야한다는 썰이 있음
이기면 만사가 형통하고 지면 음오아예;
관악산 자체가 문제란게 아님
관악산이 바라보는 위치가
중요하단것...
관악산은 고려 때부터
기도빨이 잘 서고 수행하기
좋은곳으로 유명했음........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라고
공부수행하는 고시촌이 관악산쪽에 있다는것도..
어찌저찌 말이 됨!
참고로 관악산은 관악구에만!
있는것이 아님 금천구,안양,과천에 걸쳐져있음

태조: 무학대사 말 안 듣고 이제와
묻는게 좀 그렇긴한데 뭐 방책 없나?????
무학대사야 말해줘봐

무학대사: 음...알써 알려주께
근데 다 막을 수 있으려나 모르겄네...

태조: 잘...잘 좀 해줘봐...!!!!!!!!
그래서 관악산의 불의 기운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숭례문임
崇
불타는 모양을 가진 높을 숭
禮
불의 오행을 가진 예도 례
이름을 붙였음
불에 불로 맞선다
이열치열 개념이라보면 될듯
불의 방패인 숭례문

그리고 불의 타오르는 형상으로 만들기 위해
현판을 세로로 달았으며
당시 예술가로 유명한
양녕대군이 찝찝하지만 걍 써준다라는
마음으로 썼다라는 이야기가 있음
명필 중 명필이라 백성들과 모든이들이
저 현판을 사랑했다함
또 뿐만 아니라

문 앞에 연못까지 만들어서
한양의 정문인데도
사람들이 다이렉트 왔다갔다하지 못하게했음
사람들 왔다갔다하면
화기가 더 쎄지니...
연못이 있어 궁에서 숭례문까지의 길을
우회하게 만들음
현재 남지연못은 없음 일제가 싹 다 메워버림^^
풍수지리뿐만 아니라 소방용수로도 쓰였던
연못을.....

태조: 후후 이제 괜찮겠지....숭례문도 세웠고....

무학대사: 과연...???
에후 텄다텄어...
200년 뒤....
1592년
숭례문에 화재가 작게 발생함
이 때 많은 대신들이 흉조가
들었다며 말을 했는데
이로부터 보름 후....

임진왜란 터짐

왜놈들이 한양도성 침략 첫 날에
바로 경복궁 불 질러서 잿더미가 되어벌임....
그리고....
1907년

일본 왜놈들이
대한제국군에게 무기도 반납하고
강제해산 명령을 내리자
마지막 혈전을 벌이게 됨...
그리고 이 국권피탈 직전에
벌이게 된 전투는

숭례문 앞에서 벌어졌고

이 남대문전투 당시
대한제국군들의 거센 반항으로
일본군들은 기관총 폭약을 준비
대한제국군은 격렬한 전투 끝에 패함
이것은 대한제국으로서의 ‘마지막 항쟁’이었음
그리고

하루는 숭례문의 현판이 떨어졌는데
그로부터 3일 뒤

경술국치가 일어남
우리나라의 주권이 강제로
일본에게 넘어감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후

일본은 조선인들의 숭례문을
아끼는 마음이 너무나 크자 대놓고 허물지는 못하고
누각의 태극창문부분을 없앤다던지
흙이나 전기배선을 쌓아둔다던지
틈나는대로 숭례문을 훼손했으며

조선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남산에 신궁(神宮)을 짓고 신궁에서
남대문쪽으로 380여개의 계단을 만들었음...
일제 해방 후

1950년 따사로웠던 초여름 1392년
건설한 이래 한번도 붕괴가 없었던
숭례문 옆 성곽이 일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음
사람들은 별 뜻없이 성곽을 수리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며칠 뒤
6.25발발

서울을 함락한 김일성은
숭례문에 본인사진과 스탈린 사진을 걸어두기도 하였음...
그 후....
2008년....

채종기라는 방화범으로 인해
발화5시간만에 90프로이상이 타버리는 일이 발생함



정말 전국민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기점으로 나라가 망할것이다라는 말들을
많이 했을정도로 숭례문은 갖고있는 의미가 컸음.....

무학대사는 숭례문을 지으며
‘만일 숭례문이 전소되면 도읍과 국가전체가
운이 다한것이니 멀리 피난을 가야한다’
라는 말을 남겼음
무학대사는 이걸 다 알았을까...???
물론 다 알지 못 했을 것임
"조선이 경복궁을 법궁으로 쓰는
한 왕통이 적통으로 흐르지 않고
방계로 흐르면서 피를 볼 것이다."
라는 말도 예언하였는데 세상 적통으로만
왕가가 유지되기는 너무 어려운 일임
첫 시작은 풍수지리가 진짜 맞을까?
예언에 맞추어 글을 썼지만
숭례문의 스토리는 알면 알수록
지키고자하는 마음들이 더 크다는것을 알게 되었음


임진왜란이 있었지만
6년간 열심히 버티어 일본군을 내쫓았고

실패로 끝난 남대문전투
이 전투는 조선왕조가 끝날때까지
한양에서 벌어진 유일한 전투였음
점을 말하자면

일본군이 갑자기 한국군을 불러
강제해산하라고 하자

그 중 정규군인인 1대대장 박승환 참령은
“군대가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못한다면
만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라는 유서를 남긴 후 권총으로 자살을 함

박승환의 자결 소식이 알려지자
남상덕 참위를 중심으로 휘하
대대원들이 해산을 거부하고 무장 봉기해
일본군과 서울 시내에서 교전을
시작하면서 남대문 전투가 벌어졌음
그 끝은 많은 부상자와 포로가 발생한
진 싸움이었지만

당시 살아남은 대한제국군인들은
서소문등을 통해 탈출해
정미의병에 가담하게 됐음

남대문전투 소식은 빠르게 지방의
진위대로 퍼져나가게 됐고,
전국적으로 봉기를 해서
항일 전선이 구축됐으며
이것은


훗날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와 같은 대승을 이루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음
풍수지리 예언보다 중요한건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닌가....
흔들릴거라 말한것은 무학대사 한명이었으나
흔들리더라도 떠나지않겠다는 의지가 더 컸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이 있다라고 생각함
진짜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여
처음엔 풍수리지썰로만 글 쓰려했는데
파도파도 우리민족의 피땀눈물만
더 배우게 되어벌임ㅠㅠㅠㅜㅜㅜㅜㅠ
하지만 비관적인 댓글은 받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