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170억배의 초대질량 블랙홀이 만든 120억 광년 거리의 퀘이사 ‘J059-4351’를 묘사한 그림.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 가장 밝은 천체다. ESO 제공
모든 걸 삼켜버리는 지옥불이 존재한다면 이런 걸까? 천문학자들이 매일 태양과 같은 별 크기에 해당하는 물질을 먹어치우는 불덩어리 퀘이사(Quasar)를 발견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ANU) 연구진은 120억 광년 거리의 우주에서 하루에 태양 질량에 맞먹는 양의 물질을 빨아들이는 초대형 퀘이사 ‘J0529-4351’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천문학에 발표했다.
퀘이사는 초대질량 블랙홀 주위에 형성되는 거대한 발광체를 말한다. 블랙홀 주변을 회전하는 물질들은 중력에 이끌려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강착 원반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서로 마찰하며 강력한 빛을 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퀘이사다. 강착 원반이 바로 퀘이사의 에너지 공급원이다. 강착 원반에 도달한 물질은 1만도가 넘는 뜨거운 구름 속에서 최대 초속 수만km까지 회전 속도를 높이면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퀘이사란 별에 준하는 천체(Quasi Stellar Object)란 뜻이다. 처음 발견 당시 별과 같은 점광원으로 보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퀘이사는 100만여개에 이른다.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 퀘이사 ‘J0529-4351’ 주변의 하늘. 퀘이사는 네모 상자 안에 있다. ESO 제공크기는 7광년, 밝기는 태양 500조배
연구진은 이번에 발견한 퀘이사는 중심에 태양 170억배 질량의 블랙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발견된 퀘이사 가운데 가장 밝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추정한 이 퀘이사의 밝기는 태양의 500조배다.
연구진의 일원인 사무엘 라이 박사과정생은 “이 모든 빛이 너비 7광년의 강착 원반에서 나온다”며 “이는 우주에서 가장 큰 강착 원반”이라고 말했다. 7광년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의 45만배, 태양에서 해왕성까지 거리의 1만5천배에 해당한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 중 가장 강력한 빛을 발하는 천체이지만 그동안 알려진 약 100만개의 퀘이사 또는 초대질량블랙홀 중에서 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 퀘이사를 처음 포착한 건 1980년 유럽남방천문대의 슈미트남방천문조사(Schmidt Southern Sky Survey) 프로그램이었지만, 과학자들은 2023년이 돼서야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슬라이딩 스프링 천문대의 2.3m 망원경 관측을 통해 이것이 퀘이사라는 걸 알게 됐다. 연구진은 이후 칠레에 있는 초거대망원경(VLT)을 통한 후속 관측을 통해 퀘이사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연구진이 초거대망원경을 이용해 강착 원반 속의 가스와 물질에서 생성된 빛의 양을 계산한 결과, 이 퀘이사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은 지금까지 관측한 블랙홀 중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으며, 연간 태양 질량의 413배에 이르는 물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하루에 태양 1개가 넘는 물질을 삼켜버린다는 얘기다.
퀘이사 ‘J0529-4351’(왼쪽)과 인근에 있는 태양 질량급 별(오른쪽)의 밝기 비교. 네이처 천문학에서 인용다시는 못 볼 120억년 전 초기 우주 때의 모습
연구를 이끈 크리스천 울프 교수(천체물리학)는 연구자매체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그러나 이런 블랙홀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 퀘이사는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120억년이나 걸릴 만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 우리가 보는 퀘이사는 138억년 된 우주가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20억년이 조금 안 됐을 때의 모습이다. 과거 어지럽게 떠돌던 은하계의 가스는 이제 대부분 별이 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떠다니는 물질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시기는 오래전에 끝났다는 것이다. 울프 교수는 “따라서 이 퀘이사의 기록은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의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 퀘이사의 중심 블랙홀이 별이나 강착원반이 가질 수 있는 이론적 질량 상한선 ‘에딩턴 한계’(Eddington limit)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를 확인하려면 더 상세한 관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