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고 있는 윤희


"너도 울긴 우는구나?"


"그만 울고 거기 앉아.."
- "언니.."
"빨리.."



"나도 당해봐서 아는데..
그냥 두면 곪아. 닦아줄게."





"언니.."



'내일이 되면
누군가 우리를 구하러 와주지 않을까..'

'서로를 의지하며 희망을 품고
힘든 나날을 버텨냈습니다.'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알았던 윤희
일본군이 증거 인멸을 위해
'위안부' 소녀들을 죽일 거란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날 밤





소녀들은 도망을 결심함


소녀들이 사라지자
인근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는 일본군





"언니, 내가 가서 시간 끌게.
먼저 가."


"안 돼, 윤희야.
같이 가."

"됐어.. 이러다 잡혀.
나밖에 일본말 못 하잖아.
길 잃었다고 거짓말 칠 거야.
그러니까 먼저 가."



"윤희야.."












나머지 소녀들은 그 틈에 도망치고






(윤희) "아악!"


'우리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대체 뭔지,
두려움이 대체 뭔지..
우리는 그대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어요.'



'신발이 다 헤지도록
오랜 시간 걸어 도착한 고향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끌려간 것을 알게 된 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셨죠.'



- "어린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어휴, 뻔뻔해라."

'고향 사람들에게 받는 경멸의 눈빛,'


'비수처럼 날카로웠던 말들은'

'일본군의 발길질보다도 아프더이다.'


"내 과거를 누가 알까 두려워
내 평생을 혼자 살았습니다."


"그렇게 묻어두고 숨어서 살았어요."



'처음에는 왜
세상에 우리를 알리나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목소리에
또 다시 상처를 받을 것 같았거든요.'


'나를,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수 없이 많아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더는 내 과거를 부끄러워 하지도,
감추지도 않기로요.'



'왜냐하면 나는 피해자니까요.'

"내가, 우리가 바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인정하고,
스스로 명백히 밝히는 것.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것."


"근데 그들은 아직도
우리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
'유감이다', '위로한다'
이렇게 에둘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수백만 번을
사죄를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나는 내 목숨이 살아있는 한 그 사실을
끝까지 밝히는 목소리를 낼 겁니다.
그것만이.."

'희생 당한 우리 소녀들,'


'윤희를 대신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유복희씨..
내가 아는 윤희는요..."


"만약에 복희씨를 만난다면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겁니다."



"그리고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할 거예요.
그러니 이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보윤) "이제 가실 시간이 되었어요.
마지막이라도 편히 가셨으면 하는데.."

(준웅) "복희 할머니도 걱정이네요.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그리운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해주면 돼."

"안 됩니다.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하는 건.."

"알아. 사칙위반이라는 거."

"근데 죽은 자가 아니라 사자라면?"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밤 이정문씨를
인도할 사자입니다.
그 전에 유복희씨와
이야길 나누고 싶다고 해서요."




"복희 언니."







"오랜만이야."

"설마.. 너 윤희니?"

"맞아. 윤희."


"맨날 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전씨 아저씨 딸, 윤희."


"네가 어떻게.."
보윤이 중길을 처음 만났던 날,

"조선의 영혼은 나를 따라오거라."




"차사님."
- "왜 그러느냐."
"저 같은 어린 아이도
차사가 될 수 있을까요?"
-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느냐?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을 텐데."

"환생을 하면 언니들을 잊어버리겠죠?
그러고 싶지 않아요.
영원히 기억하고, 언니들의 마지막을
제가 인도해주고 싶어요."


- "그대 정도의 총명함이라면
차사 시험 정도는 무리 없이 통과할 거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

"네! 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역시 언니는 날 알아볼 줄 알았어."


"널 다시 만나다니..."


"미안해.."


"미안해.."


"윤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난 언니 용서하지 않을 거야..
왜냐면 언닐 용서할 필요가 없으니까."

"잘못한 건 언니가 아니잖아."


"언니가 행복하게 살아줘서
진심으로 기뻐."

"그러니까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잘 살아줘."


"이제 정문언니 만나러 가자."


"차준웅, 너도 들어가.
너도 들어가 보면 알아."






"저를 데리러 온 사자님이시죠?"
- (준웅) "네.."

"내가 어떻게 지금 거길 가요..
내 이 두 눈으로 그놈들이
사죄하는 꼴을 똑똑히 지켜보겠노라고
먼저 간 언니들, 동무들, 우리 윤희한테
약속을 했는데.."

"그리고 거기 가면
저승에서 그들을 볼 면목이 없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혼자 짊어지지 않으셔도 돼요.
할머니께서 짊어지신 짐,
앞으로 살아갈 저희가 대신 짊어질게요."


"그러고 보니 그 분을 똑 닮았네요..
몇 십 년이 흘러도
절대로 잊지 못 할 겁니다."
소녀들이 일본군의 눈을 피해
도망치던 그 때,


호루라기 소리 들리고







갑자기 총소리 들리고

쓰러지는 일본군








"죄송합니다.
저희가 많이 늦었습니다."

- "가시죠.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를 구해주셔서."

"나라를 위해 싸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깟 군인 몇 명 죽인다고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여러분들처럼 강인하게
버텨주신 분들 덕분에
희망을 잃지 않는 거죠."








"그 분도 우리를 보고
지금 사자들처럼
그렇게 울었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
기억이 안 나서..
근데 제가 이렇게 소리 칠 거예요."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그러니까 힘드셨던 삶,
이제 더는 꽉 붙잡고 계시지 않으셔도 돼요.
다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편하게 쉬세요, 할머니."



"윤희예요, 할머니.
그토록 보고싶어 하셨던.."

"응..? 윤희라니요?"


"아니.. 저 목도리는..."

"정문 언니.."


"어..?"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해.
그때 나는 얼굴도 매일 부어 있었고,
사자가 된 후에 어른의 모습이 되었으니까."


"정문 언니.."


"이거 기억나?
내 몸에 이 낙서들이 새겨진 날."

"그때 나 혼자 울고 있을 때
언니가 핏방울 하나하나 깨끗하게 닦아줬잖아."


"어 그래.. 우리 윤희가 맞구나.."

"아이고 우리 윤희 맞아 그래..."


"미안하다.
그때 널 그렇게 두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난 내 선택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



"살아 온다고 힘들었지?"

"많이들 도와줬어..
언니들, 동무들, 윤희 네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도 힘든 줄 모르겠더라."


"그 때나, 이 때나..
우린 함께 했지?"


"맞아. 우린 언제나 함께였지."


"언니, 준웅씨 말대로
혼자서 짐 다 짊어질 필요 없어.
다 내려놔도 돼."

"이제는 편히 쉬어도 돼."




"복희 언니.. 그만 울어~"


"언니는 아직 시간 많이 있으니까
그때 웃으면서 다시 보자."





"언니, 가자 이제."

"따뜻한 봄이 있는 곳으로."













"꼭 기억할게요."





(옥황) "그대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와줘서.
하지만, 아직 이승의 숙제는
풀리지 않았다.
남겨진 이들이 걱정이 되진 않던가?"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은
세상의 망각과 진실의 왜곡을
원하겠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하고 있는 한
우린 절대 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진실은 무엇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 "네."

"전보윤 차사에게 특별한 휴가를 주었네.
모두 함께 고향에 다녀오면 좋겠지?"






"언니~!"

- "윤희야!"




"다들 살 좀 올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