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singbung/69639906
1907년 12월 일본으로 떠나는 영친왕을 배웅하기위해 모인
이완용등 대한제국 내각 대신들이 중명전 앞에 모여서 영친왕이랑 같이 찍은 사진임.
참고로 중명전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장소인데 지금도 보존되고 있는 곳임.
자세히 보면 오른쪽 귀퉁이에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있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다름아닌 그해 7월 황제에서 강제퇴위당한 고종 이명복.
아마 사진촬영의 현장을 구경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모종의 이유로 고종까지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게 된 거. 이게 의도적으로 이렇게 한 건지 아니면 단순 실수인건지는 이젠 물어볼 사람이 없지.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황제였던 사람이 한순간에 몰락하고 구석탱이에 쳐박혀 있는 듯한 모습. 그리고 퇴위를 종용했던 신하들이 티배깅 하는거마냥 자신의 집 앞에서 포즈를 잡고있는 걸 구경하는 무력한 군주. 전근대적 군주로서 평생을 통치한 고종에게는 이보다 더 굴욕적인 순간을 찾기는 힘들지.
이 때문인지 현재 해당 사진은 고종의 부분만 잘라서 전시하는 경우가 많음. (당장 지금 덕수궁 중명전 내 전시관에서도 수정된 버전을 전시하고 있음.)
그리고 또 하나는 1909년 2월 4일.
기차로 서북 평양 순례를 마치고 창덕궁 인정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마지막 황제 순종이랑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이완용을 비롯한 조선의 마지막 내각 대신들 및 높은 직위의 시종들이랑 무관들임
중앙에 앉아있는 순종이랑 오른쪽에 왕족 의양군 그리고 뒤에 시종무관 이병무를 제외하면 웃전에 대한 예의를 보이기 위해 전부 모자를 벗고 있음.
그런데 혼자 순종옆에 뒷짐지고 모자쓴 이토 히로부미를 보면 누가 실세인지, 그리고 황제는 완전한 허수아비로 전락했다는걸 보여주는 모습이지.
덤으로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1+1으로 등장하는 이완용
이 사진을 찍은지 단 8개월 뒤인 1909년 10월 26일,
초대 한국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하며
저세상으로 호적이전 완료.
1년뒤 1910년 8월 22일
어떤 나라도 신하국가로서 지배해 본 적이 없던
이름뿐인 제국 대한은
태조 이성계가 1392년 건국한 이래 518년만에 왕조의 문을 닫게 되며
대한제국도 역사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됨
위 사진들은반도 내에서 마지막으로 정통성을 가진 왕조의 최후를 상징하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음.
물론 대한제국의 황가는 일본제국의 또다른 최고 특권층인 왕공족으로 흡수되지만 이건 다른 이야기니까
그와중에 양컷에 다 들어간 이완용...
1905년 을사조약때도 대신(장관급)이어서 을사오적에 포함.
1907년 정미칠조약, 1910년 한일합방조약 때도 총리대신(총리급)이어서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포함.
그저 매국계의 JOAT 이완용
매국계의 그랜드슬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