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냄새가 지독할 정도로 심했어.”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는 악취가 있어. 남자가 새카만 속내를 갖고 있어서 그런 거야.”
“언니. 앞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는 걸 빼고는 다 할 수 있지.”
두꺼운 외투를 걸친 채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이름 모를 남자를 죽이러 간다. 등산용 가방에는 기름이 든 물병을 넣고 라이터 세 개를 챙겼다. 안주머니에 넣어둔 식칼의 찬기가 옆구리에 와 닿자 온몸에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어쩌면 살인이 적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가 자주 출몰한다는 거리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다 돼서야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왁스로 떡칠한 머리카락과 진한 스킨 냄새에서 남자의 성격이 보인다.
남자와 가까운 위치에 테이블을 잡고 앉았다. 그는 여자보다 소녀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과 은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듯 했다. 자연스레 여자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몸을 밀착시켰다. 소녀와 수연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지금 당장 그의 옆구리에 칼을 꽂고 오장육부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선 남자의 몸을 해부해야 했다. 아마도 그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파내고 파내다 못해 토막을 내서 다시금 사람이 될 수 있게 조립해야 했다. 그도 같은 생각으로 수연이의 사체를 토막 내서 강에 띄웠을 것이니까.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첨예한 칼끝을 매만지다가 그만 손을 베었다. 내 피에서도 썩은내가 난다. 남자와 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게 수연을 위한 일이 맞을까. 어쩌면 내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그녀의 영혼마저 더럽히는 건 아닐까.
수연아, 이게 맞니? 남자는 몇 사람의 미래를 앗아갔을까. 삶과 죽음 중에 무엇이 그를 고통스럽게 할까. 남자를 벌할 기회를 뺏어 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도저히 남자의 악취를 참을 수 없었다. 벽에 기댄 채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라이터가 없는 눈치였다.
“라이터 없니?”
나는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줬다. 선량한 말투에 남자는 경계심이 풀었다. 아마 그는 내 손이 두 개라는 사실을 잠깐 잊었던 것 같다. 남은 왼손은 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주방 밖에서 식칼을 쓸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스쳐가는 남자의 살결이 돼지고기보다 부드럽다. 수박을 썰 때보다 힘이 덜 들어가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나는 쓰러진 남자의 몸에 기름을 부은 뒤 불을 붙였다. 발버둥치는 거대한 불덩이를 지켜보다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