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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에게 해산물, 알루미늄, 구리 등을 주고 돈 대신 쌀을 받아오는 거래로 생계를 해결했던 김씨는 조선족 상인의 북한 측 파트너가 돼 ‘보따리상’의 노하우를 배웠다.
그는 “(장마당에 대해) 정말 세상을 얻은 기분이 이런 것이란 것을 느꼈다”며 “돈이 돌지 않는 북한 시장에 외상으로 물건을 내어놓는 법과 회수하는 방식, 한 지역에만 머물지 말고 지역특산물의 회전을 위해 타지역 상인들과 연계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등 평소에 생각조차 못 하던 일들이 그 중국인에 의해 현실화되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앞서 지난 1월 김정은은 “지방 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초보적 생필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건 당과 정부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정치 문제”라며 지방의 배급제 붕괴 실태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마당이 그나마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의 나이, 운영시간 등을 통제하는 걸 넘어 외국 상품과 남한 드라마 등을 공급하던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당국은 남보다 돈이 많아진 사람들을 향해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하면서 짧게는 1년, 많게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내렸다”며 “그렇게 처벌받고, 추방당하고, 죄 아닌 죄인이 되어 장마당을 떠나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탈북을 결심했고 2013년 9월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고 했다.
배씨는 “매일 새로운 드라마를 과일 박스 속에 숨겨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여왔다”며 “그러다가 주민들의 수요가 날로 커지자 북한 내에서 이를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서 CD 복사기를 몰래 구매해 집에서 복사본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나는 빈 CD를 중국에서 들여와 판매했다.(장사가 잘되면서) 돈이 쌓이는 재미를 보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고 한국 드라마 유포자가 공개처형까지 당하는 걸 보면서 장사를 접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