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참 죽고싶을 때 제주도 간 적이 있어
스물한살이었는데 내가 카드고 뭐고 아무것도 안들고 간걸 제주 도착 해서 안거임ㅋㅋㅋㅋ다행히도 현금 이십만원 좀 안되게 있었어
게스트하우스 갔는데 1박 2만원씩 일단 3박 한다고 육만원을 냈다
밥값이랑 집 돌아가는 표값 생각도 안하고ㅋㅋㅋㅋㅋ
돈도 없으니 숙소 근처 바다만 하루종일 보면서 지냈어
숙소 조식 먹고 점심저녁 그냥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먹고
근데 사흘째 아침에 사장님이 날 막 깨우시는거야 빨리 나와보라고
새로운 손님이 첫비행기 타고 왔는데 차를 렌트했단다, 너 드디어 관광할 기회다, 이 언니 하루종일 쫓아다녀라 하는거야
손님이 나밖에 없었어서 사장님이랑 친해졌었거든ㅋㅋㅋㅋ 사장님이 더 신나서 둘이 같이 놀러가래 막
난 미안하기도 하고 혼자 여행온 사람 괜히 방해하는 것 같아서 괜찮다고 했는데 이분이 같이 가자는거야 자기 심심하다고
그럼 죄송하지만 감사해요 하고 출발했는데 알고보니 이 언니가 전직 제주 가이드였대
너무 힘들어서 때려쳤는데 제주도 지긋지긋하지만 오롯이 혼자 여행은 해봐야 덜 억울할 것 같아서 왔다는거야
난 제주 처음이라니까 제주 한바퀴 일주 시켜주심
유명한 카페 들러서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 다 사주시고 관광지 가서도 입장료에 기념품까지 손에 들려주시고, 심지어 점심 먹으면서는 회에 쏘주가 빠지면 안된다면서 본인은 운전해야 하니 대리만족 시켜달라며 나만 소주 마시라고 시켜주시고ㅋㅋㅋㅋㅋㅋ
저녁에 고기랑 술까지 엄청 사서 숙소 들어가서 같이 먹는데 내가 십만원을 드렸어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해서
집에다가 연락해서 카드나 돈 보내달라고 하면 되는거니까
근데 한사코 거절하시는거야 절대 안받을거라고
둘 다 술 좀 되니까 그때 얘기하시더라
본인이 스무살때 죽고싶어서 혼자 인도를 갔었는데 어느날 소매치기를 당해서 빈털터리가 됐대
한국 가는 날짜는 일주일 남았는데 어떻게 해얄지 막막해서 그냥 멍때리고 있는데 같은 숙소 묵는 언니가 와서 갑자기 말을 걸더래 며칠동안 본척도 안하던 사람이
그렇게 일주일을 그 언니가 밥사주고 차사주고 관광시켜주고 다 했대
한국 갈 날짜 돼서 한국 가면 보답하고싶으니까 연락처 달라고 했더니 됐다고, 대신에 나만큼 나이 먹으면 너도 너같은 동생 만나서 똑같이 해주라고, 그럼 된다고
그 기억을 십년을 품고 있다가 처음으로 게스트하우스에 왔는데 내가 있어서 그렇게 반갑더래, 드디어 보답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그 언니 그 다음날 아무도 모르게 체크아웃 해버려서 연락처는 커녕 이름도 모른다
근데 평생 기억날 것 같아
아직도 그 언니가 사준 엽서랑 머그컵 책상 위에 있거든
그리고 나도 보답할 수 있을 그 언젠가가 너무 기다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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