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2000명을 증원에 반발해 전국의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을 하고 병원에서는 파업이 일어난다. 위급한 환자와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병원에 남은 인력들은 과도한 피로를 호소하며 쓰러진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 간의 비공개 면담이 진행된다. 여기에 시민단체는 '밀실협상은 안 된다'며 반대 성명을 낸다.
정부가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한 것이 2023년 10월이니, 무려 5개월 동안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의대 증원 문제로 발생한 의료 대란을 보면서 떠오르는 사례가 있다.
2017년, 놀랍게도 독일 헌법재판소가 의대 입시에 개입한다. 당시 독일 헌법재판소는 의대 정원이 지나치게 적게 책정되어 있어서 확대하라는 입장을 낸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의대 입학 경로에 다양성 강화를 더 요구한다. 성적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전형의 경우에도 오직 성적만으로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협회와 갈등은 없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이 수업거부를 한다거나 의사들이 진료를 중단하였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정원을 늘리는 결정은 사회의 이목을 끄는 뜨거운 뉴스도 아니었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애초에 법과 제도는 왜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법은 만들어지면 누구나 지켜야 한다. 누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은 모두가 지켜야 하는 법이 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왜 이해당사자들과의 논쟁만 부각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그간 우리 법의 나태함에도 책임이 있다. 한국 사회의 극심한 엘리트주의와 살인적인 명문대 입시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법은 적극적으로 개입한 적이 없다. 이제 법의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 원문 :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7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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