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까치꽃. 정식 명칭은 일본어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 옮긴 큰개불알꽃이다. ⓒ 성낙선
이 꽃의 정식 명칭만 떠올리면 금세 마음이 상한다. 아직도 이 들꽃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 남아 있다. 이 꽃의 정식 명칭은 '큰개불알꽃'이다. 이름이 너무 저속해, 그때는 이게 정말 정식 명칭일까 의심했다. 아니길 바랐다.
큰개불알이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에 '마키노'라는 이름의 일본인 식물학자가 붙인 것이다. 큰개불알꽃의 열매가 '개의 음낭'을 닮았다 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학자가 지은 이름치고는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본인으로서는 나름 진지한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마키노는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개', '좀', '쥐' 자가 들어간 우리 식물들
일본인들이 만들어 붙인 이름들 중에, 이런 종류의 이름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나라 식물 중에는 유난히 '개', '좀', '쥐' 자가 들어가는 이름들이 많다. '개망초', '쥐오줌', '좀민들레' 등이 그런 이름들이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런 이름들 상당수가 일본 이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참 고약하기 짝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윤옥씨가 펴낸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인물과사상사, 2015)을 보면, '큰개불알꽃'을 비롯해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좀개갓냉이' 등도 일본 이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며느리밑씻개의 일본말은 '의붓자식의밑씻개'이다. 일본말을 흉내 내면서 우리가 오히려 한 발 더 나간 꼴이다.
심지어 개나리는 일본어 표기에 '개' 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데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교육을 받은 우리 학자들이 기계적으로 '개' 자를 넣어 이름을 지은 경우다. 봄철에 개나리만큼 아름다운 꽃도 드문데 거기에 왜 '개' 자를 가져다 붙였는지 의문이다. 이런 이름을 가진 식물들을 대할 때마다 은연중 하찮고 질이 낮다는 인상을 받는다.
'큰개불알꽃'이라고 불렀을 때와 '봄까치꽃'이라고 불렀을 때의 느낌이 판이하다. 느낌이 다르면, 그 이름을 가진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본인 학자들은 그렇다 치고, 해방 후에도 이런 일본어 이름들이 살아남아, 우리나라 식물학자들이 펴낸 식물도감에까지 그대로 올라가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개불알'과 '복주머니'... 같은 꽃 다른 이름
해방이 된 지 수십 년이다. 그 사이 누군가 그 이름들을 바꿔 보려는 시도를 했을 법하다. 큰개불알꽃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이름은 거의 똑같은 '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이 있다. 개불알꽃은 그나마 꽃 모양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이 개불알꽃이 요즘은 '복주머니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복주머니란은 1970년대 국내의 한 식물학자가 '개불알이라는 이름이 너무 저속하다'는 이유로 개명을 요청하면서 어렵게 이름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개불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큰개불알꽃은 개명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머지 식물들은 말할 것도 없다. 복주머니란은 개명을 한 극히 드문 사례에 속한다.
이 사례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같은 꽃 모양을 보고서도 누구는 개불알을 떠올리고 누구는 복주머니를 떠올렸다는 사실이다. 애정을 가지고 보면 이름이 달라진다. 개명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많은 학자들 중에 그 누구도 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정식 명칭을 고수하는 게 학자들이 지녀야 할 태도라고 하더라도, '개불알'이나 '밑씻개' 같은 일본식 이름까지 지켜내려는 태도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국제적인 규약을 지켜야 하는 '학명'은 손을 댈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이름은 충분히 고칠 수 있었던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요약 : 우리나라 식물 이름중에 유난히 저속해보이는 이름이 있다면 대부분 일본인의 짓이다 (일본이 또!!!!!!!!!)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912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