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읽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면 과장해서 멸종위기종을 보는 느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더 자극적인 재미를 줄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침을 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유튜브 쇼츠를 즐겨보는 사람이니까. 그러다가 위기감을 느끼고 독서를 의무감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어려운 명작 소설을 억지로 읽다가 마음이 꺾여버린다. 그렇다면 독서를 어떤 소설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 나는 이 질문을 누가 물어본다면 미스터리 소설부터 읽으라고 하고 싶다. 미스터리 소설은 쇼츠만큼의 도파민은 아니더라도 다른 명작들보다 큰 재미를 주고, 그 중에는 메세지까지 훌륭한 소설들도 있기 때문에 초심자가 독서의 흥미를 갖게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이.왜.명? 시리즈의 5번째 키워드는 미스터리로,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 소설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 1편 ) 이 작품은 왜 명작일까? #1 (디스토피아 편)
( 2편 ) 이 작품은 왜 명작일까? (성장 소설)
( 3편 ) 이 작품은 왜 명작일까? #3 (부조리 문학 편)
( 4편 ) 이 작품은 왜 명작일까? #4 (스페인 내전 편)
( 다른시리즈) 소설 도입부 Top 10 작품의 도입부는 왜 대단할까? (1위~4위)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아서 코난 도일
"그들은 모두 이성적인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그 흉악한 짐승에 관해 똑같은 말을 하더란 말입니다. 바로 바스커빌가의 전설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개라는 거죠. 온 마을이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역시 미스터리 소설의 아이콘과도 같은 캐릭터 셜록 홈즈 작품이다. 사실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가 위대하고 워낙 캐릭터가 잘 뽑혀서 왓슨과의 케미가 보는 맛이 있지만, 요즘 시대에 읽는다면 아쉬운 점이 많다. 설정 오류들을 제외하더라도 아무래도 오래된 소설이다 보니 추리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트릭이 구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어렸을 때는 뤼팽과 셜록 시리즈를 정말 많이 읽었지만, 어른이 되고 독서를 다시 할 때 실망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미스터리 소설을 장르로 정립한 작품이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지금 다시 봐도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소개하기로 했다.
바스커빌 가문의 개는 아서 코난 도일이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를 죽인 이후 (독자들의 살해 협박으로 인해) 홈즈 사망 이전의 이야기라는 설정으로 나온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의 홈즈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해결사 셜록 홈즈의 비중이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줄어들었고, 왓슨의 분량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매력이 떨어지진 않았다. 우선, 바스커빌 가문의 설정이 굉장히 좋았다. 유서 깊은 바스커빌 가문의 저택은 외딴 늪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이전 악랄한 영주였던 조상이 지옥에서 온 사냥개에 죽은 뒤 저주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는 가문이다. 이 가문에서 다시 검은 사냥개에 의해 사람이 죽게 되면서 과연 사건이 정말 저주와 같은 미신인지 밝히러 홈즈 일행이 떠난다. 이러한 설정들을 통해 작품 특유의 공포스러움과 음산함으로 가득찬 배경이 극을 매력적으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색다른 전개 방식도 포인트다. 원래 셜록 홈즈 작품이라면 작품의 전반부에 홈즈가 왓슨에게 '이것도 모르냐는 표정'과 함께 천재적인 추리로 범인을 추리해내면, 후반부에 범인을 체포한 다음 사건의 전말(대부분 범인의 범행동기)이 밝혀지는 형식이다. 사실 이런 부분이 현대 독자들이 읽기에는 좀 지루한 부분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런 틀에 박힌 전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홈즈 대신 왓슨의 시선으로 탐문을 하며 점차 사건의 전말과 범인의 정체를 밝혀가도록 매끄럽게 이야기가 전개되도록 구조를 바꾼 점이 흥미진진하다. 셜록 홈즈가 초반과 후반에만 등장하고, 왓슨이 직접 사건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추론을 하는 전개를 택했다. 물론 나중에 왓슨의 추리는 셜록 홈즈의 추리에 의해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항상 셜록 홈즈의 발자취를 기록하기만 했던 왓슨이 주도적으로 추리를 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과연 바스커빌 가문의 개는 진짜 지옥에서 온 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트릭이었을까? 궁금하다면 한번 이 음산한 저택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정립한 게 아서 코난 도일이라면, 미스터리 소설의 트릭을 발전시킨 건 아가사 크리스티다. 그래서 만약 살면서 추리물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금 봐도 참신한 트릭들이 꽤 많이 있을 정도로 미스터리 작품의 재미를 돋게 해주는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코난이나 김전일을 비롯해서 여러 미스터리 물에서 이미 닳도록 다뤄져 클리셰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장 유명한 클리셰가 된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다루자고 생각했다.
어느 외딴 섬에 과거 남들은 모르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정체를 모르는 범인이 사람을 한 명씩 살해하기 시작한다. 범인은 서로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서로를 견제하지만, 살인은 멈추지 않는다.... 어디서 들어본 설정 같다고? 당연하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다시피 아가사 크리스티의 인기 작품은 모두 클리셰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이런 설정을 앞으로 보게 된다면 '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차용했구나~'라고 생각하면 좋다. 오리지널 작품이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와서 차용한 작품들에 비해서 조금 딸릴 수도 있긴 하지만(솔직히 작품 후반부가 약간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최초로 이런 설정을 정립한 소설 작품이기도 하고 지금 읽어도 충분히 재밌기 때문에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이번에 다루는 작품들 중에서 형식이 혼자만 다르다. 다른 작품들은 모두 주인공인 탐정이 존재하고 그를 중심으로 추리를 진행하지만, 이 작품에는 크리스티 작품의 단골 손님인 푸와로도 제인 마플도 등장하지 않는다. 섬에는 오직 10명의 사람이 존재하고, 누군가가 사람들을 한 명씩 죽이기 시작한다. 전문적인 추리를 하는 사람이 없이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추리를 벌이고, 누구인지 모를 연쇄 살인마는 'Ten Little Soldiers'라는 노래 가사대로 사람들을 계속 죽인다. 이런 긴장감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스릴러 소설로 분류될 정도로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연출은 독자들을 압도한다. 과연 10명 중 범인은 누구일까? 아니면 10명 중에 범인이 없는 건 아닐까? 궁금하다면 한번 미스터리 퀸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에 빠져보길 바란다.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문서 사자실이 추워 손이 곱다. 나는 이제 이 원고를 남기지만, 누구를 위해서 남기는지는 난도 모르겠다.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아니 이 작품이 왜 여기서 나와? 싶을 수도 있다. 분명 서문에 "미스터리 소설은 독서 초심자들에게 좋은 소설이다 어쩌구 저쩌구.." 주저리 주저리 늘어놨으면서 어렵고 긴 소설을 소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독서 초심자에게는 힘든 소설이 맞다. 그러나 그건 이 소설의 100%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때 어려운 소설이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하려면 당시의 종교적인 대립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좋지만, 장미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자세한 디테일을 알지 못하더라도(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작품 초반에 아드소가 설명해준다) 셜록과 왓슨 듀오와 비슷한 성격의 윌리엄과 아드소 듀오의 케미와 추리를 보면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일단 가볍게 읽어보고, 그 다음에 본인이 흥미를 느껴서 더 찾아볼수록 작품을 최대치로 즐길 수도 있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존재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소개하기로 했다.
이 책의 재미는 수많은 의견들이 충돌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제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모두를 알아듣기는 어렵지만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처음은 '이단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인물들의 고찰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이단으로 규정되는 몇몇 단체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분명 이단으로 몰릴만한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올바른 신앙과 딱히 큰 차이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올바른 신앙인지에 대한 고찰을 한다.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로 이어간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일행인 윌리엄을 비롯해서 수많은 수도사들이 각자 다른 진리를 향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접근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은 존재한다. 오히려 진리에 대해 집착을 하지 않는 자세가 진리를 찾는 가장 좋은 자세가 아닐까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솔직히 이 소설이 첫 문장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마지막 문장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물론 에코는 제목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독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말만 남겼으니까. 그러나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장미의 이름은 곧 이름밖에 남지 않은 장미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장미는 예전 대성당들에 달려있는 장미 모양 창, 즉, 종교를 상징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이 늙은 아드소가 과거를 회상하는 식의 전개라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드소의 시대에 수많은 종교적인 논쟁과 그로 인해 살인까지 일어났던 수도원은 이제 폐허의 형태만 남았다. 이는 결국 종교 종파, 즉, 그 시대에서 이데올로기가 다르다고 해서 벌어진 분쟁들이 결국 시간이 지난 미래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망한 결과일 뿐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장미의 이름은 무엇인가? 언젠가 이 책을 읽어보고 무언가를 깨닫는다면, 모두에게 알려주길 바란다.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적극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인간이란 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통해 희열을 얻으려는 인종이고, 어디 그럴 만한 기회가 없는지, 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는 누가 됐건 상관없는 것이다."
서양 미스터리 소설만 추천하면 너무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어서 동양 미스터리 소설 중에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원래는 긴다이치 코스케 (김전일 할아버지) 시리즈 작품 중 하나를 고민했다. 그러나 외딴 곳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설정이나 음산한 분위기의 작품은 이미 소개했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 작품을 소개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일본의 천재적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소개하기로 했다. 악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에 포함되지만, 푸와로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하나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듯이 시리즈를 다 챙겨보지 않아도 독서하는데 지장이 없다.
악의를 추천하는 이유는 기존 추리 소설이 How에 중점을 둔 소설이라면, 이 소설은 Why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사실 우리가 추리 소설을 볼 때 원하는 건 명탐정이 트릭을 천재적인 추리로 풀어내고 범인을 잡아내는 장면이다. 추리 소설에서 범인의 범행 동기는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다. 명탐정 코난 어이없는 살인 동기 TOP 10안에 들어갈 정도로 어이없는 것만 아니고 독자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이기만 하면 된다. 음식 코스로 따지면 디저트와 같은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디저트 같은 살인 동기를 메인 디쉬로 서빙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이 소설은 분량의 1/3이 되기 전에 가가 형사가 범인의 허술한 트릭을 눈치채고 범인을 체포해버린다(아 왜 이렇게 빨리 잡히나요 범인!!). 그 이후에는 사건에 대한 위화감을 느낀 가가 형사가 범인의 살해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조사하는 흥미로운 전개다.
이 작품은 이렇게 파격적인 전개만이 강점은 아니다. 소설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굉장히 훌륭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 다른 사람을 죽인다면, 그에 마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니까. 아마 자신의 아이를 죽인 원수, 혹은 지독한 괴롭힘 등등 이런 논리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그 감정에 의해 별 이유 없이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한마디로 누군가를 죽일 정도로 싫어하는 그 '악의'는 생각보다 쉽게 형성된다. 예를 들어 어떤 연예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치자. 마음 속에 씨앗처럼 잠복해있던 이 작은 악의는 그 연예인에 대한 악의적인 루머를 보며 무럭무럭 자란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말과 함께 욕을 퍼부으며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악의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고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나는 지금 나만의 악의로 누군가를 죽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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