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93번째사자후
등 뒤에 꽃다발을 숨기고 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아. 그 사람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사실 내 등 뒤엔 언제나 꽃다발이 있었어. 누굴 좋아한다는 거, 그런 게 아닐까. 앞에서 보면 그냥 뒷짐을 진 거지만 사실은 크고 예쁜 꽃다발을 숨기고 있다는 거.
사실 그 사람도 알 것 같아. 아무리 잘 숨겨도 향기가 날 테니까 말야. 그냥 모른 척 하는 거겠지. 향기를 맡고선 설마 얘가 나를, 하고 의심하면서……
가끔은 그 사람한테서도 꽃향기가 나곤 했었어.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기로 했어. 우리 둘 모두 등 뒤에 꽃다발을 숨긴 채였던 걸까. 그러면서도 서로의 향기를 모른척 한 걸까. 아니면 그냥 너의 뒤에도 꽃다발이 있길 바랐던 걸까.
꽃다발은 예쁘고 향기롭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시들어버려. 그래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그 사람에게 꽃다발을 줘야만 해.
천년만년 기다리다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꽃다발도 있었던 것 같아. 상대방의 등 뒤에 있는 게 꽃다발이 아니라 꽃 한 송이인 것 같아도 그만큼 상대방의 향기가 약해도 아니 사실 향기가 전혀 나지 않아도 내가 먼저 꽃다발을 건네줘야만 해.
꽃들이 모두 시들기 전에, 내게서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게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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