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에 죽고자 했으나 책을 내게 되어 다행이다.
죽은 사람의 글은 더 꼼꼼하게 읽힌다. 특히 그의 일생과 관련하여.
내가 죽어도,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내 글을 대충 읽어주면 좋겠다. 다음 작업을 기대해주면 좋겠다.
반대로 내가 살아 있을 땐, 죽은 사람처럼 나를 꼼꼼히 읽어주면 좋겠다. 이 사람이 어째서 죽게 되었는지, 이 사람이 죽기 전에 무엇을 썼는지,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이야기 속에서 화자는 분노하고 절망한다. 울고 소리친다. 무기력해하고 죽으려한다. 엉망진창이다. 삶이 그러하듯이. 이제야 나는 비로소 이야기 속으로, 삶 속으로 나다니는 법을 알았다.
아직 죽지 말아야겠다.
지금 엄마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더불어 나에 대한 배신감으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엄마가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재밌는 이야기라는 것을.
죽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생겨나 어디로 흘러가지? 나는 항상 죽고 싶다.
엄마는 내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죽고 싶다는 말과 같을까?
가족과 제대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날이 언젠가 오게 될까?
아빠는 엄마와 오빠와 나를 때리고.
엄마는 오빠와 나를 때리던.
그 시간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날이.
장도리를 든 아빠와, 구석에 몰린 엄마와
문틈 사이로 그걸 지켜보다가
잠들었던 나를,
이해하게 될 날이.
침대에 가만히 앉아 그 시간을 떠올리면
고여 있는 마음이 점점 썩어가는 게 느껴진다.
죽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어딘가로 흘러가는 날이 언젠가 오게 될까?
집으로 돌아가면 약 먹고 푹 자야지, 푹 자고 일어나서 씩씩하게 살아야지, 다짐했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
나는 이제 가족을 생각하면
이전만큼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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