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꿀벌이에욤.
이번에 새로운 집을 찾고 있는데욤.
안녕하세요, 양봉업자입니다.
꿀벌 고객님, 새로운 집을 찾으신다구요?
일단 자연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보온 보냉 잘 되고
벌들도 살기 편한
합판 나무목 아파트 준비했구요.
날아서 5분거리에
꿀을 딸 수 있는 과수원이나
아카시아꽃 나무, 밤나무등을 조성해서
바로 바로 꿀을 모을 수 있게 조성했습니다.
아 물론 꿀벌분들의 수분 덕에
열매가 잘 맺혀서
농가는 부수익을 얻을 수 있죠.
와 꿀벌이 집지으려면
한 군체가 고생고생해서
꿀도 못따고 며칠에 걸쳐 집을 짓는데,
그게 거저 굴러왔네욤.
거기다 꿀이 많은 식물들이 많아
목숨 걸고 멀리 갈 이유도 없어욤.
여기로 계약할게욤.
고객님 감사합니다.
대신 저희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라는 거,
월세로 꿀 좀 받아가는거 잊지 마시구요.
근데요 사장님....
여기 너무 덥네욤. 분봉할게욤
여기 너무 춥네욤. 분봉할게욤
여기 너무 햇살이 비치네욤. 분봉할게욤
여기 꿀이 영 시원찮네욤. 분봉할게욤
여기 너무 바람이 많이 부네욤. 분봉할게욤
바람이 또 여긴 안부네욤. 분봉할게욤
여기 안전하지 않은 듯? 분봉할게욤
여긴 어두운 듯? 분봉할게욤
그냥욤. 분봉할게욤
우리 생각보다 엄청 민감한거 아시죠?
처신 잘해요.
환경이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떠나버리는게 꿀벌이니까.
(분봉 : 벌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것.
환경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면
꿀벌은 분봉을 시도한다.)
분봉할 거면 제발 이유라도 말해라.
니들 이유 없이 떠나느라
양봉 업자 허리가 휠 지경이다.
우리 생각보다 민감해서
환경이 아니다 싶으면 떠나버려욤.
인간이 억지로 데리고 오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개나 고양이처럼
아양 떨고 그러지 않아.
우리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라는 걸
잊지 말라고.
안녕하세여? 말벌이이예여.
저기 좋은 꿀벌 군락지가 있군여.
저희 말벌 몇 마리로
꿀벌 군락지 초토화시키는 거 보여드리겠음
ㅎㅇ 나는 장수말벌
혼자서 초토화 가능
세상에 심심하면 꿀벌을 털어 먹는
나쁜 말벌들이 왔네욤.
안타깝지만 꿀벌 군락에게
말벌 몇 마리, 혹은 장수말벌 한 마리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존재입니다.
대신....오직 지구상에서
꿀벌말 쓸 수 있는 비장의 스킬이 있지요.
바로...
고대부터 맺은 언약에 따라
꿀의 이름 아래 너희를 소환한다!
서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예스, 마이 허니!!!!!"
우리에게는 독이 있어여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불이 있거든요.
보고 계십니까...프로메테우스?
니들이 높은 곳에 있어서
뭐 어쩔 건데요?
그렇게 꿀벌집을 건드는 말벌은
분노한 양봉아저씨에게 걸려서
노봉방주가 되어버렸다고 해요.
메타다시 메테다시
동맹빨 사기네
억울하면 너희도
생태계 최상위층과 계약을 맺던가요.
이것이 진화이자 공생입니다.
아무튼 수고했어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그럼 월세로 꿀 좀 받아갑니다~
아시죠?
저희 비즈니스 관계라는 거.
이거 공짜 아니예요.
근데 사장님...
꿀벌이 많이 아파요.
여기 좀 많이 추운 듯?
그래?
그럼 일단 영양제 좀 줄게.
그리고 따뜻한 곳에
집 좀 옮겨놔야겠다.....
겨울되면 얼어죽는게 기본이지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온열 기계를 발명했단다.
사장님, 요즘 벌이가 시원찮아서
꿀을 많이 못모았어요.
설탕이랑 지난 번에 저장해 놓은 꿀,
꽃가루 좀 두고 갈게...
좀 먹고 기운 좀 차려
양봉업자가 꿀벌을 착취하고
꿀을 빼앗아간다고 생각들 하지만
상식적으로 꿀벌이 굶어죽으면
손해 보는 건 양봉업자입니다.
양봉업자가 꿀을 딸 때는
당연히 벌들이 먹을 만큼은 두고 가고
영 벌들이 시들시들하면
반대로 설탕과 꿀을 줘서
먹여 살리는 것도 양봉업자의 몫이죠.
월세 안받고
오히려 돈을 쥐어줘서 살리는 겁니다.
이 정도면 착한 집주인 아님?
귀한 꿀을 가져가고
저가 설탕을 두고 가다니!!!
불쌍한 벌!!!!
인간 너무해!!! 왜 꿀 빼앗아가!!!!
뭘 모르시는군요.
자연계에서는 정제된 당덩어리가 더 귀하답니다.
인간 관점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우매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아.
인류의 농법이 발전되면서
설탕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설탕을 '저가 상품'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과거에는 꿀보다 훨씬 귀한게 설탕이었어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설탕은 왕족들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아무튼 벌들 입장에서는
꿀이나 설탕이나 같은 당이나 다름 없고
그걸 구분할 지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다 전멸하기 딱 좋은 겨울에
알아서 따뜻한 곳에 옮겨주는데다
양분까지 주니
이만한 집주인도 또 없지요.
그리고 우리도 장사는 해야 할 거 아냐!
뭐 공짜로 집지어주고 보디가드에
꽃밭 조성까지 해주는 줄 알아?
늘 말하지만
우리랑 꿀벌은
그냥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야.
가족 같은 정은 없어!
아니야!!!!
꿀벌은 자연에서 사는게 자유롭고 행복할거야!!!
왜 인간이 멋대로 꿀벌을 구속해!!
자연속에 사는게 꿀벌의 행복이야!!!
인간의 애완견이 되는 삶은 행복하지 않아!!!
구속.....?
꿀벌의 날개가 괜히 있나요?
꿀벌이 양봉장에 있는 건 말그대로
거기가 살만하기 때문입니다.
여차하면 떠나버리는게 꿀벌이예요.
우리 꿀벌들 입장에서는
인간이 마련한 환경이나
산 속에 마련한 환경이나
그저 똑같을 뿐이에욤.
다만, 더 효율적인 곳을 터로 잡고 사는 거죰.
인간은 효율적인 환경을 조성해
꿀벌이 머물도록 하는 것 뿐입니다.
양봉은 다른 가축처럼
묶어놓거나 가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오늘날의 양봉장들이
꿀벌의 분봉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겠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 싫어함.
밖에서 딱히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공간에 침범하지도 않음.
맞아요.
우리도 인간 싫음.
꿀벌집 열면 공격함.
그럼에도 인간의 양봉장에 사는 것은
꿀벌 입장에서는 거기가
엄청나게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계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꽃밭이 펼쳐진 아름다운 낙원이 아니예요.
거기다 꿀벌처럼 약해빠진 곤충에게는
포식자들이 널린 헬게이트입니다.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그건 인간에게 맨몸뚱이로
집도 절도 없이 아마존 한 가운데에서
생존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말벌처럼
군락을 초토화시키지도 않고,
오소리나 곰처럼 벌집을 부수지도 않습니다.
꿀만 가져가는데다
때때로 군락을 먹여 살리고
약을 줘서 꿀벌을 돕기도 하죠.
뭣보다 결정적으로 다른 포식자들을 날려버려서
상대적으로 꿀벌을 안전하게 만드는 겁니다.
깡패들한테 얻어 맞고 살 바에는
적당히 관리비랑 월세 주고
안전한 인간 아파트에서 사는게 낫다는 거야.
겸사 겸사 인간이 가꾼
과수원의 수분도 돕고 말이지.
인간과 꿀벌은 독특하게 진화했습니다.
꿀벌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인간과 '거래'를 할 수 있는 동물입니다.
소나 돼지, 닭처럼 잡아 먹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나 당나귀처럼 노동을 요구하지도 않죠.
그냥 자신들이 만든 꿀을 떼어주고
안전하고 안락한 환경을 받는 겁니다.
즉, 공생 체제를 이룩한 거죠.
그러니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해서
꿀벌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건 ㄴㄴ해.
진화라는 것은 방향성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살아 남는게 진화고
꿀벌은 인간과의 공생으로 그걸 이뤄낸거죠.
가끔 꿀벌을 착취해서 꿀을 얻어낸다고
뭣도 모르는 소리 하는 사람 있는데
반대로 인간들이 불쌍하다고
꿀벌을 자연계에 방생해버리면
꿀벌들 입장에서는 그게 지옥입니다.
뭣보다 인간들이 과학력으로
어떻게든 개체수를 확보하고, 치료하고
약까지 만드는 곤충은 사실상
꿀벌이 유일합니다.
비교대상 : 모기
안녕하세요? 모기입니당.
인간들은 그 과학력으로
우리를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꿀벌은 반대로 살리려고 하네요.
니들은 우리가 꼭 조지고 말거예요.
ㅋㅋ 과연 우리가 멸종하는 거랑
인간이 멸종하는 것 중에 뭐가 더 빠를까?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 보면
니들이 먼저 사라질 것 같은데?
아무튼 여러분도 꿀벌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요즘 농가에서 꿀벌이 사라져서 비상이라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 외가에서도
양봉을 하는데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해요.
양봉농가를 위해서
오늘은 가래떡에 설탕 말고
꿀을 찍어 먹어보도록 해요.
신입한테 일 알려주다가 울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