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는 방식
이러한 나를 견디다 견디다 공책을 펴고 연필을 들고 나는 시를 쓴다. 시를 쓰면서 또다시 치명적인 순간을 경험한다. 어떤 단어는 도망치고 싶어 하고, 어떤 단어는 자책하고, 어떤 단어는 애닳아하고, 어떤 단어는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나는 더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배수아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오래오래 계속되는 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 내 시간은 보이지 않고, 불분명하고, 흐릿할 뿐. 가만히 있으면 나는 밤 속에서 연기처럼 흩어지고 점점 엷어지다가, 아무도 모르게 완전히 사라질 거예요. 아무도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채로, 그렇게 사라질 거예요. 아주 적은 급료만 받는다 해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우리가 갈 초원에서는 돈이 필요하지도 않을 거잖아요. 일이 고생스러울 거라고 말하셨나요? 나는 황홀할 거예요. 슬리핑백에서 자고, 샤워도 못 하고, 화장실도 없다고 말하셨나요? 떠날 수 있다면, 나는 황홀할 거예요. 여기 가만히 있으면 내 밤이 영영 끝나지 않아요. 나를 데려가 주신다면, 나는 황홀할 거예요.
천선란노랜드
나는 가장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의 모든 것을 조금씩 잊어가는 중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너는 더 빛바래질 것이다. 너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잊고, 네 목소리를 잊고, 네 얼굴을 잊고, 그렇게 끝내 네 이름을 잊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내가 아니면 너를 누가 기억해주지? 태어났지만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죽으면 그건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난 것조차 잊혀질까. 그게 왜 너여야 했을까.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너를 살릴 수 있었던 수억 개의 가능성이 매일 밤마다 소리 없이 파묻혔다.
이종산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당신이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으며 잠깐이라도 섬뜩함을 느꼈다면, 그것이 당신이 살면서 느끼는 공포와 정확히 같기 때문이라면, 나는 무척 기쁠 것이다. 여기 실린 모든 이야기는 무엇보다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쓴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정한아왼손의 투쟁
- 시와 사랑에 대한 탐구
‘나-독자’는 실망하고,
‘나-시인’은 눈을 가리고,
‘나-비평가’는 이 기획을 원망한다.
이건 협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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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6월에 출간된 한국 여성작가가 쓴 책들이야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인지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봤었어
이 글 속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여시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기를 바라
마침내 책으로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
제목은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