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콘크리트 바닥의 비좁은 실내 동물원에 갇혀 있었던, 사자 '바람이'.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 '갈비 사자'라 불렸었다. 그랬던 바람이가 청주동물원에 온지 1년여 만에 이리 건강해졌다. 풀과 흙을 맘껏 밟고, 햇볕을 쬐며 평온하게 졸고 있다./사진=바람이 보면서 멍 때리다 함께 졸고 있는 본분 잊은 남형도 기자
사자. 포효가 8㎞씩 쩌렁쩌렁 울리고, 달리는 속도가 빠르면 시속 80㎞. 먹이를 찾으러 24㎞씩 가기도 하는 야생 동물.
그런 동물이 갇혔던 곳은 김해 부경동물원.가로 14미터, 세로 6미터.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비좁은 공간. 거기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했다. 무려 7년이나 그랬다. 무기력했다. 숨 쉬는 것마저 버거워 보였다. 꽉 막힌 작은 창문이 유일한 창구였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었던 바람이. 살리기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사진=김해시청
2004년 태어나 이미 20살이 됐다. 죽어갔다. 여생이 타들어갈 때 구하러 간 이들이 있었다. 청주동물원 사람들이었다.
지난해 여름 구조돼 1년여가 흘렀다. 바람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청주동물원에 가봤다.
여름 내음이 짙어지던 늦봄. 오르막길을 오르자 '야생동물 보호구역' 간판이 보였다. 그 안에, 갈색 갈퀴가 멋진 수사자가 저만치 보였다. '바람이'었다. 저 멀리 작게 보여 좋았다. 그렇단 건 여기가 꽤 크단 것이므로.
변 수의사는 어느 아쿠아리움이 첫 직장이었다. 거기엔 실내동물원이 딸려 있었다. 환경이 열악했다.
비버가 동물원에 들어오던 날이었다. 변 수의사는 새 동물을 기대했다. 동물원에 도착한 비버는 수십 개의 상처가 있었다. 비용을 줄이려 좁은 케이지에, 짐짝처럼 욱여넣어진 줄 몰랐다. 옮겨지는 긴 시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서로 물어뜯었다. 그의 책에 이리 썼다.
'비버는 내 손안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자책감과 좌절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결과를 겨우 받아들임과 동시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마음을 다 추스르지도 못하고 결과를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자 들려 온 대답은 뜻밖에도 '고생했다. 곧 다른 새 비버로 교환될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라'였다.
변 수의사가 별수 없다고 여겼던 일들에 맞닥뜨려 싸우는 이가 있었다. 청주동물원의 김정호 수의사였다. 국내 최초로 사육곰을 구조하고, 예산을 투입해 하나하나 동물 복지를 높이며, 시스템을 깨며 장쾌하게 나아가던 사람. 그걸 보고 변 수의사는 청주동물원으로 갔다. 김 수의사에 대해선 이리 말했다.
"팀장님(김정호 수의사)은 온종일 동물만 생각해요. 자기 건강 관리도 안 하시고요. 자기 먹는 건 진짜 달걀 한 개, 사과 이렇게 드시고…."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건, 여기서 일한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한때는 잘못된 길을 갔더라도 다시 옳은 방향으로 되돌아 가서 행동했단 것.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사진=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형도 기자
"동물들이 죽으니까요. 계속 죽고, 다치고. 마지막은 제가 만졌었고요. 갈기늑대도 있었는데 2년도 안 돼 죽고요. 워낙 시설이 안 좋아 그렇구나 느꼈어요. 시멘트 바닥에서 오래 살면 이상한 거잖아요. 저는 동물을 치료하고 잘 아는데, 저건 고통스러운 모습인데, 보는 사람들은 좋다고 깔깔거린다,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싫은 소릴 자꾸 해야 했다. 동물을 지키려니 사람과 이리 싸워야할 줄 몰랐다. 그렇게 안 해도 돈 나온다, 왜 유난이냐, 난 이만큼만 하겠다, 그런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고. 정작 동물들은 아군이 되어줄 수 없었다. 그게 외로웠단다.
팀장인 김 수의사 말을 안 듣는 무리가 생겼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까지 당했다. 무혐의가 나왔다. 부침을 겪으며 떠날 사람들이 떠났다. 동물에 진심인 이들이 대신 모였다. 변 수의사와 홍성현 수의사, 좋은 복지사들까지.
청주동물원은 청주랜드 사업소 내 팀 정도의 작은 조직. 그건 외려 장점이었다. "그래, 한 번 해봐"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속도가 빠르게 붙기 시작했다.
전문 https://v.daum.net/v/20240601083141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