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에 앞서 작성자의 주관을 바탕으로 쓰였음을 밝힙니다
구병모 장편소설
아가미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델리아 오언스 장편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 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 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김애란 단편소설집
비행운
세계는 비 닿는 소리로 꽉 차가고 있었다. 빗방울은 저마다 성질에 맞는 낙하의 완급과 리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듣다 보니 하나의 소음처럼 느껴졌다. 자연은 지척에서 흐르고, 꺾이고, 번지고, 넘치며 짐승처럼 울어댔다. 단순하고 압도적인 소리였다. 자연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은 회의(懷疑)가 없고, 자연은 반성이 없었다. 마치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 같았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안희연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우리 삶의 기반이, 반복되는 하루의 끝이 매 순간 절벽 위라면 그건 너무 힘겨운 일이잖아요. 죽음의 기억에 지배당할 때, 세상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 때, 무의미와 권태, 슬픔이 제집인 듯 맹렬히 들이닥칠 때 ‘나는 절벽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보는 거죠. 여름 언덕을 오르는 일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무더위와 목마름, 그 밖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우는 일일 테지만, 언덕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머리칼이 흩날릴 테니까. 언덕 위에서 세계를 바라보다보면, 무거웠던 것들이 조금은 옅어지기도 하고, 다시 힘을 내 언덕을 내려갈 시간이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 시인 인터뷰
최은영 단편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다섯 권 모두 편히 읽을 수 있는 여성작가의 책이야
축축하고 습한 밤을 함께해줄
무더위 때로는 천둥 번개를 잠시 잊게 해줄
책들과 함께 여름날을 같이 건너보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