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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에 약했고, 니코틴에 강했던 탓에 매번 피곤하고 자주 기침을 하곤 했었잖아. 일기장은 온통 피바다고 너의 몸에선 비린내가 났어.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의 손을 잡아 준 적 없었지. 눈에 날 끈적하게 담으면서도 빌어먹을 혈액형 때문에 혀를 섞는 일도 없었지, 너는. 모든 걸 내버리고 천국으로 도피했지만 내가 있는 세상에서는 그걸 자살이라고 말해. 너는 행복으로 질주했지만 사람들은 네가 죽은 거라고 말해.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시작되는 이맘때쯤, 네가 좋아하는 꽃샘추위가 몰아칠 때 새끼 손가락을 약하게 접으면 두 번째 마디가 저려.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보이지 않는 상처가 생긴 모양이야.
지옥으로 향한 거니 천국을 걷는 거니 내게 물으면 어떻게 해. 온통 꽃밭인지 불길인지 내게 물으면 어떻게 해. 매번 내게 두는 하얀 꽃은 젖어 있고, 너의 눈가는 다 일어나 붉어져 있었지. 나는 잘 모르겠어.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인지 천국인지, 모르겠어. 이제 담배 그만 꽂아 두어도 돼. 독만 찾던 어린 나는 이제 너의 결핍이 되었으니까.
너는 때때로 떠날 사람처럼 굴었잖아.
물에 빠진 돌고래를 구한다는 헛소리나 해대고는
바다가 좋다 말하며 매번 발이 닿지도 않는 곳까지 깊이 들어가 한참을 죽은 체 하고 있던 거, 나는 다 알아. 너를 뒤집으면 온통 상처투성이였던 것도 나는 다 알아. 네가 좋아하는 집 앞 벚나무에 꽃이 만개했는데 내일모레면 비가 내릴 거래. 너는 꼭 예쁜 순간만 골라 울더라.
작년 여름 윤재에게 죽지 않았으면 한다는 편지를 보냈고
그 겨울 윤재는 죽었다.
다시 돌아오는 여름은 춥다.
그 편지는 분실되어버린 걸까?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도 못하고
어딘가 떠돌고 있을 눈물 조각들이 그립다.
윤재는 나의 편지를 읽었을까?
그 편지를 읽었다면, 정말 내 생각을 했다면.
윤재는 왜 떠나버린 걸까.
내가 조금 더 일찍 윤재의 마음을 알아 줬더라면.
조금 더 오래 안아 줬더라면.
윤재야, 이것 봐. 사랑은 또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끝내자는 말도 없이 끝나버린 관계가 싫어
마침표도 찍지 못하고 아직도 함께다.
한 미련덩어리가 이번 여름엔 녹아 없어지기를 바라며.
긴 여행을 떠난 윤재에게.
네가 생각나면 편지를 썼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꽃을 꺾었어
정말 그곳에선 아프지 않을 수 있는지
네가 바라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지
나는 그게 궁금해
천국에서 너를 꺾어간 뒤로
내 삶은 온통 지옥인데
자꾸자꾸 마른 꽃처럼 고개나 처박고 있으면
다시 돌아와 줄 것도 아니면서 비만 내리지
원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의 꿈을 꾸면 저절로 미운 소리야
미안해 그래도 모든 마음이 진심이었어
다음 생에도 꼭 나의 지겨운 애인으로 태어나
다시 만나면 내가 먼저 떠날게
나도 천국이 아주 궁금하거든
그해 여름에는 엄마가 죽었다.
앞마당 벽을 타고 오르던 능소화는 를 다친 마을 주민이 몽땅 썰어갔고,
대문 앞에 심어둔 엄마의 탄생화는 모조리 시들었다.
고작 꽃 한송이에 죽고 싶어지는 게,
왜 절망은 꼭 한날한시 날 울게 만드는 건지
이유도 모르고 살갗이 벗겨진 눈두덩이를 마구 비볐다.
비가 내리던 날, 지저분한 손목에 영원을 새겼다.
영원은 없잖아.
나 오늘만 바보 할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손목에 새겨진 영원에게,
그러지 마.
시들어버리지 마.
어항을 조심해
발을 헛디딜지 몰라
감기 걸리지 않게
머리 맡에 가위를 두고 자
악몽을 자주 꾸던 너에게 사랑한다는 고백 대신
이빨 부딪히는 잔소리만 하던 나는 이제 없다
떠나 보니 내가 없어서는 안 돼
어항은 깨졌고
무릎엔 상처가
일주일을 고열에 시달리며
가위로 손목을 긋지
빨간약은 정말 아픈데 어쩜 겁도 없니
홀로 남은 어린 너에게 남기는 마지막 페이지
나는 다시 태어날 거야